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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여자 아이돌 그룹의 레전드이자 전설

 

'SPEED'

 

총 음반판매량 2000만장

 

모닝구 무스메

퍼퓸

AKB48

노기자카46 등

 

일본 대표 걸그룹들이

모두 카피하고 동경했던 존재

 

심지어

우리나라 걸그룹 역사에도 큰 영향을 줘서

 

S.E.S와 핑클도 SPEED의 영향을 받았고

티티마는 아예 SPEED를 대놓고 따라해 만들어졌음

 

우리나라 연예 관련 유명 커뮤니티 중 하나인

베스티즈는 원래 이 SPEED 팬사이트로 시작했을 정도

 

근데

 

이런 멋진 커리어를 

완전 말아먹고 말았는데

 

그 이유는

 

일본에서도 

최악으로 꼽히는 불륜녀가

멤버 중에 배출됐기 때문

 

 

 

 
















우에하라 타카코

 

1983년생

일본 오키나와 출생

 

SPEED에서 비주얼 1위 멤버

 

근데

지금은 일본 최악의 불륜녀로 찍힌 상황

 

그 이유는...

 

 

 




우에하라 타카코는

2012년 일본 유명 래퍼 TENN과 결혼했었음

 

상당한 잉꼬부부로 알려져 있었는데

 

2년 뒤

남편 TENN이 갑자기 자살해버림

 

 




남편 장례식날

오열하며 죽은 남편을 그리워하는

우에하라 타카코의 모습이 찍히면서

 

일본 전체가 함께 안타까워해줬었는데

제대로 반전이 있었으니...

 

2017년

남편 TENN의 유서가 공개됐는데

 

내용을 요약하자면

 

우에하라 타카코는 결혼 생활 내내

일본 남자 톱배우와 혼외 성관계를 수시로 갖는

불륜을 저지르고 있었고

 

TENN은 이를 알고 있었지만

아내의 불륜 이유가

아이를 못 갖는 자신의 신체적 사유(무정자증으로 추정)

때문이라고 자책하며 속앓이를 했던 것

 

실제로 우에하라 타카코와 불륜남과의

LINE 메시지 내용도 공개됐는데

'남편 몰래 우리끼리 아이를 만들자'라는 내용이 발견됨

 

게다가 둘만의 은밀한 사진까지...

 

그리고 TENN은 참다 참다

이 메시지를 발견하고 딱 1달 뒤

자살을 택한 것임

 

이 유서에는

불륜남의 신상도 명시되어있었는데

 

 



 

일본에서 꽃미남 배우로 유명했던

아베 츠요시였음

 

 

 




우리나라에서는

꽃보다 남자 F4 멤버 중 한명으로 유명함

 

근데 이 쉐키도

2009년에 이미 결혼한 유부남 신분이었음

 

...

 

유서의 마지막은

 

불륜을 저질렀어도 아내를 여전히 사랑하며

성불구인 자신보다는 아베 츠요시와 아이를 갖고

아내가 행복해졌으면 한다

 

근데

혹시 다음 생에 다시 만나면

그땐 불륜하지 말아라

 

내 시체가 발견되면

그냥 경찰을 불러달라 였음

 

원래 이 유서는

아내가 다치기를 원하지 않았던

TENN의 배려로 

 

유족들이

영원히 비공개할 예정이었지만

 

우에하라 타카코가 장례식 후에도

정신 못 차리고 아베 츠요시와 놀러다니고

 

언론에다가는

 

톱 아이돌이었던 아내에 비해

남편 TENN의 연예계 유명세가 낮아

상대적 열등감이 심했고

그래서 자살했을 것이라는 식의 언플도 하는 등

 

전혀 전 남편을 배려하지 않는 행동을 했기에

보다 못해 공개해버린 것

 

이후

 

우에하라 타카코는

성진국 일본에서도 최악의 불륜녀로 낙인찍혔고

무기한 활동 정지 상태가 됨

 

사실상 불명예 은퇴라고 보고 있음

 

근데

웃긴 건

 

아베 츠요시는 아직도 원래 부인과 잘 살고 있고

 

우에하라 타카코는 

2018년 연극 연출가 코우 카즈야와

혼전 임신으로 재혼했음 

 

당시 일본 내에서는

'차라리 아베 츠요시와 재혼했으면 했지

저건 또 뭐하는 짓이냐'며

 

더더욱 여론이 안 좋아짐

 

...

 

그리고

 

 

 




이마이 에리코

 

1983년생

일본 오키나와 출생

 

SPEED의 메인 보컬

 

이 양반도

우에하라 타카코만큼은 아니지만

 

불륜 커리어가 후덜덜함

 

2004년 일본 록밴드 175R 멤버와

속도위반 결혼을 했고

 

아들 1명을 낳은 뒤 초고속으로 이혼

그 뒤로 쭉 싱글맘으로 살다가...

 

 

 




느닷없이

일본 자민당에 입당한 뒤

 

참의원(국회의원) 공천을 받음 

 

지역구는 본인 고향인 오키나와인데

 

이게 상당히 

센세이셔널 했던 것이...

 

오키나와는 일본에서도 반정부 성향이 가장 강한 곳으로

자민당에 매번 선거에서 죽쓰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오키나와에서 아무로 나미에와 함께

투톱으로 자랑거리인 SPEED의 메인 보컬이

 

완전 반대성향 정당에 입당해

고향에 출마한 것

 

우리나라로 치면

 

전라도 출신 톱 여자아이돌이

국민의 힘에 입당해서

다시 전라도로 돌아와 국회의원에 출마한 격

 

 

 







그래도

명색이 일본의 톱아이돌 출신이라

 

화려한 말빨과 퍼포먼스로

참의원 선거에 당선되심

 

그런데

 

 




곧바로

불륜 스캔들이 터져버림

 

상간남은

4살 연상의 고베 지역구 참의원인 하시모토 켄

 

이마이 에리코는 이혼녀이지만

하시모토 켄은 멀쩡히 가정이 있는 유부남이었음

 

근데

둘의 불륜이 발각된 이유가

 

 













둘이 같이 선거유세를 다니면서

신칸센 객차에 손을 꼭 잡고

잠든 사진이 파파라치에 찍혔기 때문

 

 

 

 




그걸 또

공중파 방송에서 분석하는 

성진국 클라쓰...

 

게다가

 

 




호텔에서

둘이 ㅅㅅ하는 몰카까지 유출...

 

이후

 

하시모토 켄은 부인에게 이혼 통보를 받고

정치인 커리어가 만신창이가 됐지만...

 

 

 










이마이 에리코는

오히려

 

일본 내각부 (행정안전부)

정무관 (차관급)에 임용되면서

 

정치인으로써 커리어가 계속 상승하는 중

 

심지어

 

최근까지 동거한 사실혼 관계의 남성이

풍속업소(성매매) 운영자라는 폭로기사가 나왔음에도...

 

...

 

 




그래도

 

일본에서는 이마이 에리코에 대한 평가가 

마냥 나쁘지는 않은게

 

하나뿐인 아들을 끔찍히 아끼는

아들바보이기 때문

 

 

 




아들이

선천적 청각장애인이라서

 

이마이 에리코는 선거유세때도

수화를 동반한 선거활동을 했고

 

정치를 하면서도

 

장애인 복지와 처우 개선 관련해서는

성심성의껏 참여해

 

이 분야에 대해서는

평가가 높은 편

 

 

 




이 장애인 아들은 최근 프로레슬러로 데뷔했음

 

 

...

 

 

이에 반해

 

SPEED의 다른 멤버 두명

 

 

 




팀 내 맏언니


아라카키 히토에는

일반인 남성과 결혼한 뒤

 

모범적으로 조용히 살고 있고

 

 

 




팀 막내

시마부쿠로 히로코는

 

 

 




무려 12살 연하 남자와

사귀며 살짝 구설수가 있었지만

 

 

 




결국 결혼해서

잘 살고 있어서

 

 

나머지 불륜 멤버 2명과

대비되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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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전소장 에르 :) 2021. 4. 13.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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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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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전소장 에르 :) 2021. 4. 13.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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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XIVM이라고 쓰고 '넥시움'이라고 읽음



구글에 치면 바로 뜨는 소개에도 버젓이
'섹스 컬트(성착취형 사이비)'라고 떠 있음

넥시움은 1998년 경
자아성찰, 자기계발, 성공패키지를 포함한
'교육 프로그램'을 판매하면서 시작된 사이비 종교로
2018년 경에 
내부고발로 인해서 교주를 비롯한 여러 핵심 인사가
여성 성착취 혐의 등으로 구속되었고
2019년에 교주는 종신형 선고 받았음

교주 '키스 르니에리'는 



'전지전능'한 '천재'라고 자신을 포장한 남자임
달라이라마도 속인 적 있음



ㅋㅋㅋ 참고로 저때 키이스 관련한 추문을 딸라이 라마도 아는 상태였음 ㅋㅋ
(단, 넥시움 성착취 관련은 아니었고 과거의 일이었을 거)

이번 넥시움의 사건으로
수사를 받은 컬트의 핵심 인물들은 아래와 같음



굳이 전부 이름까지 알 필요는 없고
저 중에서 한 번 정도 봤을 수도 있는 유명한 인물은
이 글 바로 위,
좌측 최하단의 머리 뒤로 묶고 폴라티 입고 검은 깃세운 여성
앨리슨 맥
들어본 사람이 있을 건데 헐리우드에서 활동한 여배우임 ㅋ



대표작은 슈퍼맨(클락켄트)의 어린 시절을 다룬 '스몰빌'

그외에도 아래의 여배우들이 넥시움에 연류되었는데



그런데 이들은 중간에 나왔는지 아니면 언론플레이를 했는지 
아니면
핵심 멤버가 아니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크게 이슈가 안되었음
갠적으론 동양계 그레이스 박이 좀 안타까움

각설하고,

일단 섹스 스캔들의 핵심은
키이스와 앨리슨, 이 두 년놈 들인데(다른 '여자'도 많지만 여기선 생략)



둘의 관계를 '교주' & '교주의 섹스 노예겸 선동부장' 정도의 위치라고 생각하면 될 거
특히 이 둘이 'D.O.S'라는 조직을 만들고
가짜 자기계발(처럼 보이는) 핵심 프로그램을 만든 주동자들임

이들이 조직한 D.O.S.는 
Dominus Obsequious Sororium의 약자로 
Master over Slave Woman 이란 뜻임
주인님의 여자노예 정도로 생각하면 될 듯

이걸로 이들은 '수십명의 여자'를 '성' 노예로 부렸음



그룹의 구성은 피라미드 식으로 
젤 꼭대기가 교주(키스)
그 밑에 부장(앨리슨과 그 외)
그 밑에 노예A
그 밑에 A의 노예(B)
그 밑에 B의 노예(C)
이런 식으로 나갔음




이들 '주인'이 '노예'를 통제한 수법이 바로
모 여배우가 모 남배우를 컨트롤할 때 사용한 것처럼
일거수일투족에 대해 보고를 하고
마스터의 허락을 받아야하는 거
(이걸 뭔 용어 있었는데 까묵)




글고 다큐보면 텍스트 메시지를 재현해놨는데
'주인님, 아침 인사 드려요!'
'주인님, ~해도 될까요!'
'(음식사진 보내고) 주인님, 오늘 칼로리 어때요?'
이런 내용이 있음



이 칼로리 계산과 섭취 이야기가 왜 나왔냐면
도스의 상위 마스터들은 자신의 '노예'들에게
자기 발전, 계발, 한계 도전 등의 명목으로
의도적으로
칼로리 섭취를 제한하고
칼로리 소비를 권장함(운동 빡시게 시킴)
이런 건 보통 사이비 종교에서
세뇌 시키기 전에 몸과 마음을 모두 지치게 만드는 과정을 반드시 거치게 하는데
(이것도 용어 까묵)



뭐 이것의 일종으로 봐도 되고
그게 아니면 이 교주 새끼의 특이 성벽으로 봐도 괜춘
르니에리는 이 새기가 취향이 조낸 독특해서
굉장히 '슬랜더'한 여자를 좋아했나 봄



이게 또 이새기가 거의 두번째 와이프인가 
하여튼 그렇게 좋아하던 여자가 병에 걸려가지고 
막 살 빠지고 투병하다가 죽었거든
아무래도 그것 때문에 그런 거 같기도 하고
(이건 본인뇌피셜임)

암튼  
2019년 DOS와 관련하여 성매매 및 강제노동(성착취 포함인듯) 혐의로
벌금도 맞고 120년형을 선고받은 상태임
거의 종신형이지 ㅋ

그럼 이게 어떻게 터졌냐면은
내부고발자(휘슬 블로우)에 의해서 진행된 거임 ㅇㅇ

넥시움 DOS의 만행을 처음 폭로한 사람이 
사라 에드먼슨



이 여자 역시 헐리웃 여배우(TV쪽) 출신으로
자기계발 프로그램으로 시작했던 넥시움을 처음 접하고
인생이 변하고 난 다음에 넥시움에 빠져서
인스터럭터(설계자, 지도자 정도) 되는 위치까지 
'열심히' 올라간 사람임
그러다가 
위의 알리슨 맥에 의해서
엉겁결에 DOS에 가입하게 되고
그 결과 아래의 심볼을 아랫배에 '브랜딩' 당하게 되었음



도스의 윗선에서는 저걸
땅, 물, 불, 바람 무시기저시기 하면서 뉴에지틱한 심볼이라고 했는데
알고보니 
키이스와 앨리슨의 이니셜을 딴 '노예 마크' 였던 거임
ㄷㄷㄷㄷ

이외에도
제법 유명한 여배우의 딸이 DOS에 가입되어 있었는데 바로
인디아 옥센버그


순서대로 인디아, 키이스, 앨리슨

인디아의 할머니가 어느 나라 공주인가 그렇고, 엄마랑 아빠(이혼)가 헐리웃 배우였음
바로 이 사람인데 나는 모르는 배우임



참고로 이 여자 두번째 배우자 이름이 '캐스퍼 반 디엔'인데
이 남자는 스타쉽 트루퍼스에 나왔던 주인공임



암튼 
인디아 옥센버그는 거의 세뇌가 끝났다고 할 정도의 상태라서 
얘를 빼내는데 굉장한 노력이 들어감
얘를 넥시움에서 빼내는 과정,
그리고 빠져나온 인디아의 육성 인터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다큐멘터리 시리즈가
세듀스드: 인사이드 더 넥시움 컬트



이것 외에도 넥시움 관련 다큐멘터리가 하나 더 있는데
바로
더 바우
한국어로는 '서약', '맹세' 정도



더 바우의 경우에는 
위에서 언급했던 최초 폭로자이자 넥시움의 상위 일원이었으며
DOS가 그냥 자기계발 프로그램인 줄 알고
참여했다가 브랜딩 당한 다음에 결국 빠져나오게 된 '사라'와
DOS의 실상에 대해 알게된 그녀 주변의 상위 계급에 있던 사람들이
차례차례 넥시움을 빠져나와서 넥시움의 실체를 알리는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만든 거임
이게 가능했던 이유가
고발자들 중 핵심 멤버 가운데 한 사람이 꽤 유명한 다큐멘터리 감독이었음
그래서 계속해서 기록을 해왔던 거 ㅇㅇ




두 다큐 중에서 어느게 더 잼나냐고 물으면
갠적으론 더 바우



HBO 제작이니 믿고 봐도 될 거

참고로
세듀스드는 뭐랄까 옥센버그 모녀가
넥시움 뉴스빨 떨어지기 전에
돈 빨러 나왔다는 느낌이 좀 들어서 아쉽

관련 책도 몇 개 나와 있는데
나는 아래의 책을 구해볼 생각임



아래 링크는 첫 내부고발자로 나선 전 넥시움 핵심멤버 '사라 에드먼슨'의 수기 정도 되는 글
https://people.com/crime/smell-of-burned-flesh-former-nxivm-member-describes-being-branded-with-cult-leaders-initials/

요약:
1. 미국의 사이비 종교 넥시움(NXIVM)은 2018년에 교주와 핵심 인물의 성착취 혐의로 수사를 받았음
2. 헐리웃 배우 출신들이 개입되어 있어서 국내에서도 반짝 이슈 몰이를 했음
3. 2019년 판결 나고(교주 종신형), 2020년 관련 다큐멘터리 2편이 나옴
4. 정신 및 육체적 종속 관계, 가스라이팅, 주인니뮤하앜하앜 이 지랄에 관심 갖는 건 좆망하는 길이다 이기야
5. 그러니 당하지도 말고 가하지도 말자 이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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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전소장 에르 :) 2021. 4. 13.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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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시장이 Hi Seoul 만들었는데

 

Hi Seoul은 딱히 아무 뜻이 없긴 했음..

 

 

그래서 오세훈 시장이 추가한게 Soul of Asia다 이기야

 

근데 그러니까 중국인들이 무지하게 싫어함

 

서울이 무슨 아시아의 영혼이냐! 중국이 아시아의 영혼이지!!

 

 


 


 

그래서 박원순이 중국눈치보며 바꾼게 I SEOUL U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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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전소장 에르 :) 2021. 4. 13.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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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전소장 에르 :) 2021. 4. 13.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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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좋아해? 나는 맥주를 정말 좋아해서 자주 먹는 편인데

일게이들과 전반적인 맥주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려고 해

글이 좀 길 수도 있는데 재미있게 쓰려고 많이 노력했으니까 잘 봐주기 바래

눈을 홀리는 황금빛깔, 순백색의 거품, 머리 끝 까지 전해지는 청량감!!


세계인의 사랑을 두루 받고 있는 맥주에 대해 araboza!!



목차

1. 고대의 맥주

2. 맥주의 양조 공법
   가. 상면발효
   나. 하면발효

3. 맥주에 얽힌 일화와 축제

4. 토막상식(홉과 그 종류)

5. 마무리


1. 고대의 맥주

인류 역사에서 맥주가 등장한 것은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그 중에서 가장 신빙성 있다고 여겨지는 2가지 설에 대해 설명해주려고 해

‘기원전 4,000년 경 수메르인이 먹던 주식인 곡물죽에 의해 등장했다’는 설
‘기원전 1,500년 경 이집트인이 만들어먹던 빵에 의해 등장했다’는 설이야

먼저 ‘기원전 4,000년 경 수메르 인이 먹던 주식인 곡물죽에 의해 등장했다.’는 설부터 알아보자.




수메르인은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을 중심으로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이룩한 민족이야.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은 매년마다 범람이 일어났는데 수메르인들은 강의 범람을 막기 위해 관개시설을 확충하고 자연환경을 활용하여 농사를 짓기 시작했어.

강이 범람하여 비옥해진 땅에서 재배된 작물은 보리였고 수메르인들은 보리를 빻은 후 물에 부은 음식인 곡물죽을 주식으로 했다고 해.

그러나 남는 보리를 저장할 마땅한 방법이 없었던 수메르인들은 보리를 햇볕에 말려 보관하기 시작했는데 말린 보리는 싹이 트기 시작했고 이것이 ‘맥아’야


[맥아, 맥주의 주 재료]

수메르인들은 이 맥아를 이용해서 곡물죽을 만들었는데 이 곡물죽이 보리를 이용해서 만든 곡물죽보다 더 달콤하며 소화가 잘 되었던 거지

우연히 몇일 방치되었던 곡물죽을 먹었더니 아니나 다를까!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 아니겠어?

맥아는 각종 효소가 활성화되어 있어 포도당과 맥아당 등이 형성되어 있어, 이런 맥아를 빻아 물을 이용해 만든 곡물죽은 현재 양조에 쓰는 맥아즙과 비슷한 성질을 띄는데 이 맥아즙이 야생 효모와 곰팡이를 만나서 발효된 것이 초기의 맥주라고 해

수메르 인들은 이 초기의 맥주를 발전시켜 보리와 밀을 이용한 술인 ‘시카루(Sikaru)’를 빚게 되


[기원전 3,000년 경 술의 여신인 닌-카시에게 바칠 맥주(시카루)를 빚고 있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당시 술을 빚는 수메르인들은 노동의 대가로 시카루를 신분에 따라 차등 지급 받았다고 하고 함무라비 법전에도 맥주에 대한 조항이 있을 정도로 대중적으로 음용된 술이란 것을 알 수 있어

이어서 ‘기원전 1,500년 경 이집트인이 만들어먹던 빵에 의해 등장했다’는 설에 대해 알아보자.

이집트인들은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발아시킨 보리나 밀을 빻은 가루를 반죽한 후 얼마간 숙성시켰다가 구워서 부드러운 빵을 만드는 기술을 개발했어.


[이집트의 전통빵, 아이시]

빵을 숙성시키면 야생효모를 통해 발효되는데 이 과정에서 알코올과 탄산가스가 발생하고 이 탄산가스가 빵을 부드럽게 만들지.

이 빵을 물에 불리고 몇 일 동안 발효시킨 뒤 체로 걸러내면 특별한 색과 맛을 가진 액체 시카루가 만들어졌어.

이러한 이집트의 양조방법이 수메르인의 양조방법과 유사하며, 더 늦은 시기에 등장한 것으로 봐서 소아시아인의 이동으로 수메르인의 양조방법이 이집트로 전파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하고 있어. 고대 이집트에서는 시카루를 액체 빵이라는 뜻의 ‘헤크’라고 칭했어.


[고대 이집트인들이 헤크를 빚고 있다. 이 과정은 벽화에 자세히 남아 후대로 전해졌다.]


[고대인들이 시카루(헤크)를 마시고 있다.]

이 고대 맥주들의 공통점은 걸쭉한 죽 같은 질감이었다는 거야. 수메르 인과 고대 이집트인들은 긴 항아리에 담아 빨대로 빨아마셨다고 해

시간이 흘러 이집트가 정복 전쟁을 하게 되면서 헤크 제작 기술이 유럽 인근 지역에까지 이르게 되었다고 해. 시카루, 헤크의 죽 같은 맥주의 형태에서 발전하고 변화하여 현재의 맥주가 된 거야

시간은 흘러흘러 기원전 500년. 그리스/로마 시대에서 맥주는 와인에 비해 후한 대접을 받지는 못했어. 맥주는 와인에 비해 저급하다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지.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 그는 ‘이집트인이 맥주를 마시는 것은 포도가 없기 때문이다.’ 라고 말했다.]


[그리스의 작가 아이스킬로스. 그는 이집트 사람을 두고 ‘보리로 만든 술이나 마시는 족속’ 이라며 비웃었다.]

그러나 그리스 시민들은 맥주를 지토스(Zythos)라 부르며 식사 대용으로 먹기도 했어. 로마인들은 정복 활동을 하면서 변방에 나가 있던 지휘관, 성직자, 병사들이 와인을 구할 수 없어 주로 맥주를 마셨다고 해.

현대 유럽인들의 조상인 게르만인들도 맥주를 즐겨 마셨는데 게르만인이 맥주를 마시기 시작한 시기는 로마와 전쟁을 치르던 시기로 추정되고 있어. 고대문명의 맥주 빚는 기술이 메소포타미아 -> 이집트 -> 그리스/로마 -> 게르만족 순으로 전파된 거야.


[게르만인]

하지만 메소포타미아의 시카루, 이집트의 헤크, 그리스의 지토스가 야생 효모를 활용한 걸쭉한 죽 형태의 맥주였다면 게르만인들은 다른 방법으로 맥주를 빚었는데 바로 발아된 곡물을 솥에 넣고 약한 불에 오래 끓인 뒤 맥주통에 담아 발효했다는 거야.


[로마의 역사학자 코르넬리우스 타키투스, 그는 저서 ‘게르마니아’에서 ‘보리나 곡물을 끓여서 와인처럼 괴어오르도록 한 품위가 떨어지는 술’ 이라며 게르만족들의 맥주를 언급했다.]

곡물을 끓이게 되면 야생 효모가 사멸해서 자연 발효가 어려운데 게르만인들은 벌꿀을 첨가해서 꿀 속에 있는 효모를 활용해 맥주를 발효했지.

그래. 현대적인 맥주 양조의 기초가 확립된거야!!


[서로마 황제 샤를 마뉴]

8~9세기 무렵 교황으로부터 서로마 황제의 칭호를 수여받은 샤를 마뉴를 비롯한 프랑크 제국의 황제들은 적극적으로 기독교를 포교하기 위해서 제국 각지에 기독교 수도원을 건설하기 시작해

이렇게 설립된 수도원에서 수도사들은 맥주를 양조하게 되었는데 수도원에서 양조된 맥주들은 수도사와 민중에 의해 많이 소비되었어


[수도사들이 맥주를 마시고 있다. 그들은 금식 기간에도 하루 1잔의 맥주를 마시며 2주가량을 버텼다.]

수도원의 맥주는 적은 양의 곡물로도 충분한 양이 생산되었고 민중에게는 액체 빵이라고 불리며 식사 대용으로, 또는 하수시설의 부재로 오염된 식수를 대신하여 물 대신 마시는 음료로 각광받았어.

시간이 거듭될수록 수도사들은 양조기술을 발전시키며 점차 맥주는 현재 우리가 아는 모습으로 진화해왔어.


2. 맥주의 양조공법

맥주의 양조 공법은 게이들도 잘 알겠지만 크게 ‘상면발효’, ‘하면 발효’, ‘자연발효’ 3가지로 나뉘어. 한번 알아보자.


   가. 상면발효


15~25도의 상온에서 발효시켜 맥주 효모가 수면 위로 떠오른다 하여 붙혀진 이름이야. 에일(Ale)이 가장 잘 알려져 있고 흑맥주로 유명한 스타우트, 그리고 밀 맥주인 바이스비어가 상면 발효 맥주로 분류된다.


  1) 에일(Ale)

대부분의 에일 맥주의 종주국은 영국이야. 오랜 세월에 걸쳐 개량되고 분화하면서 여러 가지 종류의 에일 맥주가 있어.

에일맥주는 라거 맥주에 비해 월등한 풍미를 가지고 있지. 라거 맥주가 상대적으로 비슷비슷한 보리와 홉의 맛과 향이 있는데 반해 에일 맥주는 상면발효법의 특성상 맥주 위에 떠 있는 효모가 짧은 시간에 고온에서 발효를 진행하면서 여러가지 원료의 맛과 향을 풍부하게 살려낸다는 특징이 있어. 에일 맥주는 10~13도 정도에서 가장 풍미가 좋다고 해.


  2) 페일 에일(PA, Pale Ale)


‘Pale’은 창백하다 라는 뜻인데 빛깔이 옅거나 밝다는 느낌으로도 사용하는 단어야. 페일 에일은 한 마디로 옅은 색을 띄는 에일이라는 뜻이지.

영국의 페일 몰트라는 품종의 보리를 이용한 맥주로 향이 매우 좋기 때문에 너무 차갑게 마시지 않는 것을 추천해. 영국 현지에서는 비터(Bitter) 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고 해.


  3) 인디아 페일 에일(IPA, India Pale Ale)


페일 에일과 마찬가지로 영국에서 만들어졌어. 19세기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에 수출하기 위해 개발되었는데, 당시 수출 항로가 너무 길어 맥주가 상하자 맥아와 홉 사용량을 대폭 늘려 저장성을 극대화한 맥주야.

일반적인 맥주에 비해 알코올 함량이 높고 쓴맛이 강하지만 재료 특유의 맛과 향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강렬함 때문에 마니아층의 전폭적인 사랑을 받고 있어.


  4) 다크 에일(Dakr ale)


다크 에일은 검게 볶은 맥아를 사용해 검은색을 띄는 에일맥주를 통칭해서 부르는 말이야. 종류로는 스타우트(Stout)와 포터(Porter)가 있는데 간단히 비교하면 스타우트는 아일랜드식, 포터는 영국식이라고 이해하면 될거야.

19세기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진행되면서 빈곤한 노동자들이 값싼 까만색 에일을 많이 마셨는데 주 소비층이 항구에서 짐을 나르던 짐꾼(Porter)이었기 때문에 이름이 포터 라고 붙여졌다는 이야기도 있어.

스타우트는 맥주 양조기술이 그다지 발전하지 않았던 아일랜드에서 영국의 포터를 밴치마킹해서 만들기 시작했다고 해. 유명한 종류로는 기네스가 있다.


  5) 바이스비어(Weissbier)


다른 에일들이 영국에서 생산된 것과 다르게 바이스비어는 독일 남부 바이에른 지방이 원조야. 독일 바이에른에서 생산된 것을 바이스비어 그 외 지역에서 생산된 밀맥주는 바이젠비어(Weizendier)라고 불러 양조과정에서 밀 맥아가 50%이상 들어가는데 보리 맥아 맥주보다 만들기가 까다롭고 발효 진행이 매우 어렵지만 제대로 만들면 엄청난 풍미를 느낄 수 있는 맥주야.

맥주 순수령에도 불구하고 지배층이 꾸준히 만들어 마시던 이유가 있어. 바나나와 비슷한 향이 나면서 밝은 노란빛에 탁한 색, 쓴맛이 매우 적기 때문에 부각되는 부드러운 맛이 입 안을 가득 채우는 것이 특징이야.

밀맥주는 발효에 사용한 효모를 거르지 않고 출하하기 때문에 대체적으로 색이 탁하게 보여. 따라서 제대로 즐기려면 살살 흔들어서 가라앉아 있는 효모를 같이 마시는 것이 좋아


   나. 하면발효


10도 이하의 낮은 온도에서 발효시키고 저온 숙성하여 만들어지는 맥주야. 발효 과정에서 맥주 효모가 밑으로 가라앉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며, 흔히 라거(Lager)로 불리는 맥주라 하면 발효 맥주야


  1) 라거(Lager)

전 세계 시장 점유율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맥주로 1400년대 뮌헨에서 처음 개발됬어. 라거는 저장하다는 뜻의 독일어 Lagern에서 이름이 유래되었지.

지금의 라거 맥주의 큰 특징은 황금빛 빛깔인데 원래 오리지날 라거 맥주는 에일과 마찬가지로 어두운 빛을 띄었다고 해. 지금의 황금빛은 맥주회사들이 경쟁을 통해 만들어낸 결과물이야. 라거 발효 시 저온의 상태를 유지해야 해.

그렇기 때문에 냉장 설비가 없던 옛날에는 지하 저장고를 만들거나 추운 날에 만드는 방법을 선택했어. 현대에는 냉장 설비를 쉽게 갖출 수 있어 어렵지 않게 양조가 가능하고 특유의 시원함과 청량감으로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아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을 가진 맥주로 성장했어. 묵직한 바디감의 에일과는 다르게 가벼운 바디감과 높은 탄산, 깔끔함이 특징이야


  2) 페일 라거(Pale lager)


페일 라거는 현재 팔리고 있는 황금빛의 일반적인 라거 맥주를 전부 포함하는 상위개념이야. 페일 에일을 만들 때 사용하던 페일 몰트와 홉을 이용하여 저온에서 하면 발효시킨 맥주야. 보통의 라거보다 더 연한 황금빛 색에 강한 청량감을 느낄 수 있어. 


  3) 부가물 라거(Adjunct lager)


미국에서 처음 개발된 부가물 라거는 미국에서 가장 시장 점유율이 높은 맥주야. 주 원료인 보리과 홉을 줄인 대신 값싼 다른 곡물을 첨가하여 생산 단가를 낮춤 보급형 라거지.

맥주 특유의 맛은 약하지만 가볍게 즐길 수 있어. 주로 들어가는 부가물에는 당분을 주기 위한 옥수수, 쌀 등 향을 주기 위한 초콜릿, 커피, 체리가 들어가. 대표적으로 미국의 밀러와 버드와이저, 멕시코의 코로나가 있어.


  4) 다크 라거(Dark lager)


스타우트처럼 검게 볶은 맥아로 제조한 라거야. 스타우트가 묵직한 쓴맛을 내는 것에 비해 부드럽고 강한 청량감 속에 훈연향이 느껴지는게 특징이지.

영어로는 다크(Dark), 독일어로는 둔켈(Dunkel)이라고 하는데 뮌헨산 맥아를 사용하면 특유의 진한 빛이 잘 난다고 해서 어두운 빛깔의 라거를 싸잡아서 둔켈 이라고 해. 위에서 말했듯이 초창기 라거는 어두운 빛을 띄고 있었고 그 때문에 과거에는 ‘라거는 곧 둔켈’ 이었어.

뒤에 소개할 필스너의 시초인 골든 라거가 1840년대에 만들어진 후에야 라거와 둔켈이 분리되었지.


  5) 필스너(Pilsener)


위에서 소개한 페일 라거의 시초가 된 맥주야. 1840년 체코의 필젠이라는 도시에서 독일의 라거 제조법을 도입해서 생산했어. 기존의 라거보다도 훨씬 맑고 투명한 색이 특징이고, 쓴맛과 홉향이 더욱 강하지.

이런 독특한 풍미 때문인지 필스너는 출시하자마자 엄청난 인기몰이를 했어. 필스너가 엄청난 인기를 끌자 원조였던 독일에서도 독일식 필스너 스타일의 라거인 ‘필스너 우르켈’을 출시하게 되. 우르켈은 우리말로 원조 라는 뜻이야. 지금은 필스너 스타일 맥주를 총칭하는 단어가 되었고 다양한 미국의 부가물 라거나 하이네켄, 칼스버그가 필스너의 제조법을 응용해서 생산하고 있어.

역사가 비교적 짧기 때문에 상면 발효 맥주에 비해 다양성이 다소 떨어지는데, 하지만 지금도 여러 크래프트 브루어리에서 다양한 라거류를 개발하고 있기 때문에 라거의 다양성은 더욱 증가할 것으로 보여


   다. 자연 발효 맥주(Lambic)


벨기에에서 유래된 이 맥주는 상면 발효도 하면 발효도 아닌 독특한 발효 방식으로 만들어져. 우리나라에서는 매우 생소한 람빅은 국내로 따지면 메주를 발효하는 식으로 술을 만든다고 비유할 수 있어.

상면 발효나 하면 발효는 특정한 효모에 의해 발효가 진행되지만 람빅은 공기 중에 떠다니는 잡다한 균들을 이용해. 그렇기 때문에 보리와 밀로 만든 맥아즙을 나무 통에 담고 그대로 공기 중에 노출시켜 수년간 발효를 거치게 되지.


[람빅 맥주가 발효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장소에서 발효를 시켜도 나무 통마다 맥주 맛이 다르다고 하고 또한 자연환경의 영향을 크게 받기 때문에 기상 이변이 생기면 양조가 망하는 경우도 있다고 해. 람빅은 다양한 원액을 혼합하거나 원액에 과일을 넣어 발효시키는 등 추가 과정을 거치고 시장으로 나오게 되는데 대체적으로 곰팡내와 텁텁함, 강한 신맛을 가진 것이 특징이야.

하지만 특유의 풍미 때문에 의외를 찾는 사람이 많아. 벨기에 서부에서만 만들어지는 맥주이기 때문에 양조장 수도 매우 적고 취향을 강하게 타서 국내에 수입되는 람빅 맥주는 매우 적어.


3. 맥주에 얽힌 일화와 축제

독일인들의 맥주사랑은 대단해. 그만큼 맥주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해서 각 도시, 혹은 마을을 대표하는 맥주가 있을 정도야. 1인단 연간 맥주 소비량 역시 세계 3위권이며 전문 맥주 양조 기술자 양성 기관을 두고 체계적으로 기술을 전수하고 연구한다고 해. 그렇게 때문에 독일은 맥주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도 많아. 몇 가지를 소개해 줄게


   가. 맥주에 얽힌 일화

  1) 맥주 순수령(Reinheitsgebot)


맥주에 관련된 독일의 가장 대표적인 이야기야. 1516년 바이에른 공국의 빌헬름 4세에 의해 제정된 이 법은 맥주 양조 재료를 보리와 물, 그리고 홉만으로 제한하고 가격을 통일시키는 법령이었어.

제각각이었던 맥주 제조법을 하나로 통일하고 규격화하여 조세를 늘리고 식량을 확보하기 위하여 실행되었다고 하는데 현식은 곡물과 맥주에 의한 손익 관계를 둘러싼 교회와 영주, 그리고 상인 간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함이었다고 해. 맥주 순수령을 근거로 다양한 첨가물을 이용한 양조업자들은 맥주를 압수당하고 무거운 처벌을 받게 되었지.

하지만 지배층이 즐겨 마시던 밀맥주 양조는 바이에른 공국 왕실이 독점한 상태에서 여전히 성행하였다고 해. 후에는 밀이나 호밀도 사용할 수 있도록 수정되었고 머지않아 폐지되었지만 현대의 다양한 맥주 회사들이 맥주 순수령에 따른 맥주가 전통 양조법으로 만든 진짜 맥주다 라는 마케팅 요소로 사용되고 있어


  2) 파르잠의 성 콘라도(Conrad of Parzhm)


콘라도는 19세기 독일의 카톨릭 성인 중 한 명으로 프란치스코회의 수도자이며 맥주에 관련된 재미있는 일화를 가지고 있어. 콘라도는 수도원의 문지기 일을 하였는데 그러면서 수도원을 방문한는 이들에게 맥주와 음식을 제공하곤 하였다고 해.

후에 코라도의 성인 자격을 심사하는 자리에서 담당 조사관은 ‘여자들에게 음주와 혼취를 조장한 사람을 어찌 성인으로 추대할 수 있는 것인가?’ 라며 콘라도의 성인 추대를 반대하였지. 그러자 당시 뮌헨 대주교가 ‘맥주 두 잔 말이요? 독일 여성들이 고작 맥주 두 잔에 취할 리가 없잖소!’ 라고 반박했고 심사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수긍하여 성인의 자리에 올랐다고 해


   나. 세계 4대 맥주축제

  1) 독일 옥토버페스트


독일의 바이에른 주 뮌헨에서 9월 15일 이후 돌아오는 토요일부터 10월 첫번째 일요일까지 16~18일간 열리는 가장 큰 맥주 축제야. 1810년 바이에른 공국의 초대 대공인 빌헬름 1세의 결혼을 축하하는 축제에서 시작된 이 축제는 200년이 넘어가는 역사를 자랑하지.이 시기만 되면 매년 600만명에 달하는 인파가 축제를 방문하여 엄청난 양의 맥주와 음식을 소비해.

옥토버페스트의 개회식은 매우 독특한데 1950년 뮌헨 시장이 맥주 통을 개봉하면서 오 차프드 이즈(O zapft is : 맥주통이 열렸다) 라고 외친 것을 시작으로 옥토버페스트의 개회식 전통으로 자리잡았다고 해.

여담으로 1차, 2차 세계대전 때는 열리지 않았고, 1926년 축제 기간 중 폭탄이 터져 13명이 죽고 200명이 부상을 입는 최악의 사건도 터졌어.


  2) 일본 삿포로 비어가든


일본 삿포로의 맥주 축제인 비어가든은 삿포로 오도리 공원에서 개최되며, 매년 7월말부터 8월초 까지 열려. 운영시간은 매일 정오부터 21시까지 운영해.

삿포로 비어가든은 1959년 처음 시작되어 50년간 이어져 온 세계적인 맥주 축제야. 독일에서 맥주 양조를 직접 배워 온 일본인이 1876년에 일본 최초의 맥주 양조장을 만들면서 삿포로 맥주의 역사가 시작되었지.


  3) 중국 칭다오 국제 맥주 축제


칭다오 국제 맥주 축제는 8월 둘째주 주말부터 16일간 열리며 15시부터 22시까지 행사가 진행해. 다른 맥주축제들은 야외에서 진행하는데 반해 칭다오 맥주 축제는 실내에서 진행하고 있어. 칭다오 맥주축제는 아시아에서 가장 큰 맥주 축제로 1991년 8월에 처음 시작했어.

칭다오는 과거 40년간 독일의 지배를 받은 적이 있는데 당시 독일의 맥주 양조 방법과 칭다오의 맑은 물이 만나 지금의 칭다오가 탄생했다고 해.


  4) 체코 필스너페스트


필스너페스트는 필스터우르켈의 본고장인 체코의 필젠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열리며, 세계적인 규모의 맥주 축제이자 체코 최대의 맥주 축제야. 매년 8월 말에서 9월 초 주말에 열려. 1842년 체코의 대표 맥주인 필스너우르켈의 첫 생산을 기념하며 개최되는 행사야.

체코는 1인당 연간 맥주 소비량이 세계 1위로 꼽힐 만큼 맥주를 즐겨 마시는데 필스너페스터에서는 필스너 우르켈을 무제한으로 먹을 수 있다!!! 또한 전 세계 대표 바텐더들이 참가해서 마스터 바텐더 경합을 벌이기도 해

우한폐렴이 종식되면 게이들도 찾아가봐라 이기이기


4. 토막상식(홉과 그 종류)

홉(Hopfen)은 독일이 원산지인 식물이야.



전통적으로 불면증이나 불안 증세를 해소하는 약재로 쓰였으며 차로 즐기기도 했어. 그리고 꽃을 맥주에 사용해. 특이한 것은 맥주에 넣는 홉은 무조건 암꽃이야. 수꽃은 맥주의 풍미를 채치는 불쾌한 냄새가 나기 때문이지.

홉은 맥주의 맛과 향 그리고 품질 유지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맥주 특유의 쌉사름함과 향기는 모두 홉에서 나오는 거야 또한 강력한 향균 작용과 산패 방지 작용이 있어서 식품의 보존을 위해서도 쓰였다고 해.

모두 홉에 포함된 알파산이라는 물질 때문인데 알파산은 맥주에서 쓴맛을 나타내는 물질의 총칭으로 생각하면 될거같아. 그리고 맥주에 사용한 홉의 알파산 함량에 따라 IBU 값이 달라져. IBU는 International Bitterness Units scale의 줄임말로 맥주의 쓴맛을 나타내는 척도야.

수치가 낮을수록 부드럽고 높을수록 바디감이 강하지. 보통의 맥주가 10~30사이이며 50을 넘어가게 되면 상당히 묵직한 쓴맛을 느낄 수 있어. 현재의 홉은 거의 맥주를 위해서만 재배, 사용되고 있고, 1919년부터 품종개량을 시작하여 약 100여가지의 품종이 개발되어 있다고 해. 

독일을 포함한 몇몇 북유럽 국가와 미국, 그리고 호주에서 주로 재배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99년까지 홉을 재배했다고 해.


  가. 미국의 3C hop


[왼쪽부터 캐스케이드 홉, 센테니얼 홉, 콜럼버스 홉이다.]
미국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품종의 홉이야. 캐스케이드(Cascade), 센테니얼(Centennial), 콜럼버스(Columbus) 가 모두 C로 시작하기 때문에 위 3가지 품종을 모두 3C hop으로 불러. 시트러스향이 강한 것이 특징이고 쓴맛이 적어. 이 중에서도 케스케이드 홉은 국내의 카스 맥주에도 사용되고 있어.


  나. 아마릴로 홉(Amarillo hop)


상당히 귀한 홉 품종이야 IPA 양조의 핵심 재료인 아마릴로는 미국의 버질 가마체 농장에서 개발하고 생산하는 홉이며 특허까지 붙어 생산을 독점하고 있어.

가격도 보통 홉의 2~3배이며 소량 판매를 하지 않아 구하기가 어렵지만 크래프트 맥주에서는 최고급 홉으로 취급되고 있지


  다. 유럽의 노블 홉(Noble hop)


풍미와 알파산 함량이 일정 수준 이상에 이르고 유럽 내 특정 지역에서만 생산되는 홉이야. 노블 홉들은 보통 알파산 함량이 낮기 때문에 맛이 부드러우며 은은한 향이 도는 것이 특징이야.

종류에 따라 강한 허브향이나 매콤함이 나기도 해. 대표적으로는 차즈(Saaz)와 테트낭(Tettnang) 품종이 있어


  라. 뉴질랜드의 넬슨 소빈 홉(Nelson sauvin hop)



뉴질랜드에서 개발된 품종으로 아마릴로와 함께 크래프트 맥주 양조장에서는 최고급으로 여겨지고 있어. 고급 백포도주와 유사한 맛과 향을 가지고 있어서 유명하지만 현재는 유일하게 뉴질랜드 크래프트 브루어리에만 공급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구하는 것이 불가능한 홉이야.


  5. 마무리

현대에는 정말 다양한 형태로 맥주를 제조하거나 즐기는 문화가 발달해 있으며 맥주 간의 시장 점유율 또한 급격하게 변하고 있어. 불과 2~3세기 전만 해도 맥주 시장의 주류를 이루었던 에일 맥주가 라거에게 주류 자리를 넘겨주었고 이제는 수제맥주(Craft beer)가 대세지. 이에 따라 다양한 브루어리가 생겨나고, 영업을 하고 있는 추세야. 독자적인 비법으로 만든 특색있는 맥주들이 현대인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어. 우리나라도 지역별로 특색있는 맥주가 출시되어 편의점을 점령하고 있지.


그리고 한가지 더 바로 홈 브루잉(Home brewing) 맥주가 있어. 말 그대로 집에서 해 먹는 맥주인데 맥주는 다른 술에 비해서 재료 원가나 만드는 과정이 비교적 간단하기 때문에 일반인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어.

해외에서는 홈 브루잉이 활발한 편이고 국내에서도 홈 브루잉을 즐기는 비중 역시 늘어나고 있어. 보통은 홈 브루잉 전용 키트를 구입해서 입문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숙련도가 높아지면 자신만의 레시피를 개발하여 나만을 위한 수제 맥주를 만들어 즐길 수도 있지.

맥주에 관심 있는 게이들은 홈 브루잉 전용 키트 얼마 안 하니까 한번 시도해봐라. 좋은 추억거리가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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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전소장 에르 :) 2021. 3. 29.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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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룩셈부르크 행위 예술가

드보라 드 로베르티스
Deborah-De Robertis는 프랑스 파리

오르세 미술관 한 미술작품 앞에 다리를 벌려 앉아

자기 신체 주요부위를 관람객들에게 보여주는 

퍼포먼스
performance를 함










드보라는 스스로 <기원의 거울>이라 이름 붙인

이 퍼포먼스를 한 이유로


“여성의 성기를 그리는 것은 예술인데, 보여주는 것은 왜

외설이냐?” 
는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 였다고 










오르세 미술관 측은 드보라의 이런 행위를 즉각 제지하였고

“예술이냐? 외설이냐? 문제가 아니라

미술관 규칙을 지키느냐? 안 지키느냐? 
의 문제이다”라고

제지이유를 설명하게 됨







이런 엽기적 퍼포먼스를 기획해 미술계를 도발하게 한 예술 작품은

프랑스 사실주의 화가 구스타브 쿠르베
Gustave Courbet

1866년 그린 <세상의 기원> 때문 임







<세상의 기원_L’ Origine du monde 1866 오르세미술관>

“세상의 모든 것이 여기서부터 비롯되었다”



이 그림은 처음 공개 될때 사회적 파장이 너무 커

그려진 후 100년이 넘도록 공개되지 못하다가 1988년에야 비로소 

오르세 미술관을 통해 관람객들에게 공개 되었음












오늘은 19세기 프랑스 사실주의 화가 구스타브 쿠르베에 대해

알아보고자 함









사실주의_Realism




“상상력에 따른 이상화(理想化)를 거부하고

밖으로 드러난 겉모습을 자세히 관찰한다”











태양왕 루이 14세는 귀족들과 부르주아에게서 권력을 되찾아

절대왕정_Bourbon을 세우기 위해 파리에서 남동쪽으로

22km 떨어진 베르샤유에 새로운 궁전을 신축하게 됨










바로크 양식으로 신축된 화려한 새 궁전의 내부를

더욱 화려하게 치장해 줄 장식품들이 필요했고

남성적 바로크Baroque미술과 여성적 로코코Rococo 미술

그렇게 프랑스에서 싹트게 되었음









<사비네 여인의 겁탈_The Rape of the Sabine Women 1634-5 니콜라푸생>


바로크 미술은 이탈리아에서 먼저 시작되었지만

루이14세는 절대왕정 권위를 바로 세우기 위해

<왕립 회화 조각 아카데미>를 설립하였고









<자화상_ 1650, 니콜라 푸생>


고전주의 화가 니콜라 푸생Nicolas Poussin 후원해

절대왕정을 빛내줄 프랑스 바로크 미술을 발전시켜 나가게 함









<그네_The Swing 1767,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


루이 14세가 사망 하자 그 동안 절대왕권에 숨죽여 오던

귀족과 부르주아들은 베르샤유 궁에서 보았던 화려함을

자신의 집으로 옮기려 노력 하였고 로코코 미술

이런 귀족과 부르주아들의 문화 욕구를 채우며

귀족문화로 자리매김 하게 됨









<랑부이에 후작부인과 최초의 살롱인 랑부이에 저택>


귀족들과 부르주아들은 서로 경쟁적으로 집을 화려하게 꾸미기

시작했고 그 수요를 채우기 위해 미술 시장 <살롱>이 탄생 함










살롱을 중심으로 미술시장은 비약적으로 커져 갔지만

프랑스 혁명을 계기로 로코코 미술은 시들해져 가게 되어 버리고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_Le Sacre de Napoléon 1805-7 자크 루이 다비드>


미술의 유행은 르네상스 때로 돌아가고자 하는 신고전주의

작가의 감정, 상상력을 드러내는 낭만주의로 변화하게 됨



이전까지의 미술은 신화, 성스러운 종교화, 역사 이야기

주로 다루었고

왕족, 귀족, 부르주아 특권층 만의 전유물 이였음








미술을 포함한 예술은

예술을 접하고 예술가를 후원하는 후원자의 입맛에 따라

그들이 원하는 방향에서만 존재했고

화가들은 그 후원과 지원 속에서 안정적으로 창작할 수 있었음










19세기 시작된 산업혁명은 미술계에도 변화를 가져오게 만듬

미술시장이 대중화 되어 화가들을 후원자로부터

자유로워 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카메라의 출현은 미술의 대중적 관심을 사진으로 옮겨가게 해

많은 초상 화가들의 밥벌이를 위협하기에 이르게 됨  










더이상 후원을 기대할 수 없게된 화가들은 

퐁텐블로 외곽 바르비종
Barbizon 에서 모여 살며


"실내 아틀리에’에서 그리던 고전적이고 낭만적 자연이 아닌

자연의 모습을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 관찰해 그리게 되면서,,,








<이삭줍기_Des glaneuses 1857 Millet>


자연주의Naturalism는 이렇게 시작됨








<삼등열차_The Third-Class Carraige 1862, 호노레도미에>


쿠르베는 도미에Honore Daumier등과 함께

이전 미술 인위성을 거부하며


"미적 대상은 현실과 왜곡된 것이 아닌 평범한

일반 시민들의 모습과 가치관을 보이는 그대로 정직하게 옮기는 것” 



으로 규정하며 자연주의에 심취, 열중하면서

자연주의 바탕에서 사실주의Realism는 싹티우게 됨





“자기가 속하는 시대의 풍속, 관념, 현실을 본대로 그린다”









구스타브 쿠르베_Gustave Courbet(1819~1877)








<〈샘〉_La_Source_1868>



“나에게 천사를 데려오면 천사를 그려 주겠다”

“내가 보지 않은 것을 절대로 그릴 수 없다”











구스타브 쿠르베는 1819년 6월 10일 부르고뉴 프랑슈콩테와 지방

오르낭의 부농인 아버지 엘레오노르 레지와 어머니 질리 쿠르베의

사이에서 태어났음
 








<질리 쿠르베_Zélie_Courbet 1853>



아버지의 뜻에 따라 법학도가 되기 위해 왕립고등학교

입학하지만 쿠르베는 그림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됨


부모의 전폭적 지원속에 화가가 되기 위해 파리로 온 쿠르베는

루브르 박물관 그림들을 모사하면서 그림을 연구 하기 시작했고

스페인파, 네덜란드파, 베네치아파 등을 공부하며


특히 <렘브란트>의 그림에 푹 빠지게 됨









<검은 사냥개와 쿠르베_Courbet au chien noir’ 1842>


쿠르베가 23세 되던 1842년에 그린 이 자화상을 1844년 왕립

아카데미 후원 프랑스 미술가 전시회 ‘르 살롱_Le Salon’ 전

출품해 입선하게 되면서 쿠르베는 미술계에 등단 하게되었음
 








<프루동과 아이들_Proudhon-children 1865>


미술계에 등단한 쿠르베는 시인 보들레르Charles Pierre Baudelaire

사회주의자 프루동Pierre Joseph Proudhon, 평론가 뒤랑티 

당대 지식인, 철학자, 평론가들과 교류하면서

자신의 예술세계를 인정받았고 비평가와 대중들에게도

서서히 각인되기 시작함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_ La Liberté guidant le peuple 1830, 외젠 들라크루아>


“리얼리즘의 기초는 이상을 거부하는 것이며
이상을 거부하는 것은
개인을 해방하는 것이고
결국 민주주의를 성취하는 것이다
리얼리즘은 본질적으로 민주주의적 미술이다”








<참회하는 막달레나_The Penitent Magdalen 1640, 조르주 드 라 투르>


"루이 13세의 궁정화가로 부와 명예를 같이 얻은
조르주   투르Georges de La Tour
고향에서 민심을 잃어
그의 가족 모두 농민들에게 맞아 죽었다"








<돌 깨는 사람들_ 1849>


이상화로 만들어진 이야기 보다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솔직 담백한 이야기가

때로는 사람들에게 더 큰 감동을 전해 주기도 한다









<오르낭의 매장_Burial at Ormans 1849>

 “내가 노력하는 것은 전통의 온전한 지식으로부터 나 자신의
독립성과 나만의 개성을 합리적인 감각으로 이끌어내는 것이다”


“그림에 사용된 물감이 아깝다”라고 사람들은 말들 하지만
나는 존재하는 사람들을 그림 안에 존재시켜 현실을 기록한다




1850년 파리살롱에 공개된 <오르망의 매장>은 비평가들에게

“그릴 이유가 없는 그림이다” “추하다” “황당하다”라는

비평을 받게 됨



<오르낭의 매장>은 쿠르베의 고향 오르낭에서 있었던

한 농부의 장례식을 배경으로 한 작품 임 


신고전주의나 낭만주의의 이상화된 숭고하고 영적인 의미의

그림들과는 근본적으로 달리하며 화폭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한결같이 평범하게 삶과 정서를 사실적으로 드러내고 있음 









쿠르베는 이 그림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인물들을 실물 크기로
그렸내었다" 


이 작품은 기존의 전통 역사화의 경향을 소박하고 진실성이 담겨진
사실의 재현으로 신과 영웅들의 전유물이었던 존엄성을
40여명이 넘는 평범한 시민들에게 부여하였다 









<샤를 보들레르의 초상 1848-9>



쿠르베는 1949년 살롱전에 11점을 출품해 그 중 7점이

전시되는 영예를 얻으며 미술계의 중심으로 떠오르게 됨


쿠르베는 당대의 예술가 중 오직 자신만이 대중의 생각과 감정

표현해 낼 수 있다고 주장 하기 시작 함
 

그리고 그것은 곧 본질적으로는 가장 민주적이다라고 단언하며

대중을 향해 계몽적 정치적 성향을 나타내기에 이름









<Louis Guéymard as Robert le Diable  Louis Guéymard, 1857>



쿠르베는 오직 자신의 감각으로 느끼고 경험할 수 있는 것만을

받아들였음


그는 일상에 널 부러진 모든 장소와 사물들만을

진실되게 그려야 한다고 믿었음









<목욕하는 여자들_The Bathers 1853>


그림 속 한 여인은 아름답지 않은 풍만한 몸을 반쯤 드러낸 채
목욕을 막 시작하려 하는 모습이고
또 다른 여인은 그녀를 돕는 하녀인듯 하다




쿠르베는 1853년 이 그림을 ‘르 살롱’에 출품 하였음


프랑스 낭만주의 대가 외젠 들라크루아Delacroix

‘벗은 부르주아의 살찐 몸뚱아리와 엉덩이의 의미 없는 몸짓’이라고

혹평을 하였지만 그 평가 덕에 그림은 유명세를 타게 되어

고가에 판매 되었다고 함








<안녕하세요 쿠르베씨_The Meeting or Bonjour Monsieur Courbet 1854>


미술도구를 가득 맨 쿠르베는 들판 한복판에서 자신의 후원자인
알프레드 브뤼야스Alfred Bruyas를 만났다


화가와 후원자의 관계는 <갑과 을>의 관계가 분명하겠지만
그림 속 쿠르베는 브뤼야스에게 매우 뻣뻣한 모습이다


오히려 브뤼야스와 그의 하인이 모자를 벗고
예의를 지키는 분위기이다








<시장에서 돌아오는 농부들_Farmers of Flagey on the Return From the Market, 1850>


“이전 예술이 주는 환상과 허구를 벗겨 내고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을 내세웠다”










파리 국제박람회_Paris Exposition Universelle












1855 파리에서 국제박람회가 개최되었음

쿠르베는 자신의 그림을 세계 사람들에게 공개하고 싶었지만

그의 그림들은 박람회 주최로 부터 전시를 거부당하게 됨









<알프레드 부뤼야스_Portrait of Alfred Bruyas, 1854>


그러나 쿠르베의 후원자인 알프레드 브뤼야스의 도움으로

박람회 맞은편에 전시장을 빌려 개인전을 열수 있었음









<화가의 아뜰리에_ L`Atelier du peintre 1855>


“예술가로서의 나의 7년을 담은 자서전과 같은 작품이다 
이 그림을 통해 현재 프랑스가 처한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

“나는 이 전시회를 리얼리즘_Realism이라 이름 붙혔다”



쿠르베 자신과 여성모델, 어린이를 캔버스 중앙에 두고

오른쪽에는 자신에게 영향을 준 철학가, 작가, 시인 들을 그려 냄


그리고 왼쪽엔 일상 속 평범한 사람들을 그려 놓음으로

개혁에 실패한 프랑스 계급사회를 비판하고자 하였다고 함










쿠르베는 관능미가 살아 있는 누드화를 통해 여성미를 강조했음

여성들의 삶을 꾸미지 않고 객관적으로 묘사함으로 여성이

섹슈얼리티의 대상이 아닌 평범한 인격임을 나타내고자 하였음








<하얀 스타킹을 신는 여인_ La femme aux bas blancs 1861> 


과거에 없던 독특한 구도의 그림 속 여인은
전혀 고상해 보이지 않는다


상념에 젖은 듯 허공을 응시하는 여인은 몸을 팔아
하루 생계를 유지하는 매춘부
 이다









<기대 누운 누드_ Femme nue couchee 1862>


“전형적 누드화처럼 보이지만 여성 모델의 다리에는 하얀 스타킹과
구두가 신겨져 있고 한쪽으로 반쯤 내려간 스타킹은
아름답다기 보다 꾸미지 않은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그녀의 부드러운 피부 살갗은 피부 밑 핏줄이 보일 정도로
사실적
이기도 하다”



이 그림은 헝가리 컬렉터 ‘페랭 하트바니’의 소장 작품으로

부다페스트 은행 금고에 있었던 것을 1945년 2차세계대전 중

러시아 군에 의해 약탈되었다가 2007년 파리 그랑팔라스에서

전시되며 첫 공개 되었다고 함



2015년 11월 9일 뉴욕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1,560만달러(약 165억원)에 낙찰되어

쿠르베 작품들 중 최고가를 기록했음









<아름다운 아일랜드 소녀 조_  1866>


긴 웨이브 머리의 여성이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다
오른손엔 손거울을 들고 왼손으론 머리카락을 
매만지고 있다
피부는 창백할 정도로 희고 볼은 빨갛게 상기되었다
조금은 지쳐 보이기도 하고 긴 생각에 잠긴 것도 같다



모델인 조애나 히퍼넌이란 아일랜드 여성은 <조>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그녀는 사실 쿠르베의 동료 화가 제임스 애벗 맥닐 휘슬러의
모델이자 오랜 연인이었다

가난한 이민자의 딸이었던 그녀 역시 화가였지만
생계를 위해 모델이 되기도 했다

당시 사회 통념상 특히 누드모델은 창녀와 비슷한 취급을 받았기에
휘슬러의 가족은 그녀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그림은 세 사람이 프랑스 노르망디 지역에서 함께 지낼 때

그려졌다고 하며


쿠르베가 가장 아끼던 초상화이기도 했다고 함









<노르망디 해안_ Sea Coast in Normandy 1867>


당시 쿠르베는 47세, 휘슬러는 32세, 조는 23세로

쿠르베에 비해 나이 차가 많았지만

이들은 서로를 신뢰하며 깊은 우정을 나눴다고 함 



쿠르베는 붉고 윤기 나는 긴 머리카락을 가진 조의 매력에

완전히 빠져들었고
 거의 똑같은 그림을 네 점이나 그렸음 


특히 이 그림은 쿠르베 자신이 소장하기 위해 그린 것으로

평생 누구에게도 팔지 않았다고 함








거울을 본다는 건 자신을 응시하는 행위다
쿠르베는 조가 거울을 보며 스스로 얼마나 매력적인 여성인지
자각하길 바랐던 걸까 아니면 그녀의 소소한 일상마저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자신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던 걸까

노르망디에서 세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조는 이듬해 파리로 가서 쿠르베의 논란 많은 누드화
<세상의 기원>의 모델이 된다

변치 않는 우정은 있어도 흔들리지 않는 사랑은 없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이후 조와 휘슬러는 연인관계를 청산했다









<잠_ Le Sommeil 1866>


여성 동성애는 시대를 불문하고 금기 시 되었던 주제였다

그런데 나는 신화나 전설을 빌려 오지 않고
그냥 보이는 데로 적나라하게 그렸다


두 여인의 미묘하게 다른 살갗 피부색은 만져보고 싶을 만큼
투명하게 관객에게 전달 된다




잠에 빠져 엉겨 있는 두 여인은 분명 레즈비언 커플임

흐트러진 머리, 침대 위에 떨어진 장신구는 두 여인이

지금 막 열정적 사랑을 끝냈음을 알려 주고 있음


쿠르베는 이 작품을 대중들에게 공개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보는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들 정도로

대담하게 동성애를 표현했음 


당시 미술애호가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주제가 누드화였지만,

현실 속 여성의 누드를 표현하면 비난에서 벗어나지 못했음


비난을 받지 않으면서 에로틱한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화가들은 역사 속 인물이나 신화의 내용을 빌려와

표현 해야만 했음 










파리 코뮌_La Commune de Paris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어떤 것인지 알고 싶은가? 파리 코뮌을 보라!

그것이 프롤레타리아 독재였다!”
프리드리히 엥겔스










<파이프를 물고있는 남자_L’homme a lapipe Man with a pipe 1848-9>



쿠르베는 자신을 ‘타고난 공산주의자’라고 선언 할 만큼

사회주의를 찬양했음










노동의 권리를 주장하며 일어난 1848년 2월 혁명은 쿠르베에게

이상적 국가 건설의 꿈과 같았다고 함



2월 혁명이 실패하면서 일상을 사는 서민들과 노동자들은

하루를 견뎌 살아가는데 어려움과 고통을 겪게 되었고

쿠르베는 그런 상황을 외면하는 정치인들에게 불만을 갖게 됨









1870년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에서 패하면서 제2제정이 무너지자

제3공화정이 선포 됨




1871년 3월 18일 파리코뮌_혁명정부가 수립되며 나폴레옹 3세에게

충성하는 베르사유군 및 독일군과 싸울 것을 다짐하게 됨




파리 코뮌은 베르사유군이 프로이센군과 휴전 조약을 맺은 것을

불명예스럽게 받아들였고 당시 미술가 동맹 회장이던 쿠르베는

‘코민 평의회 ‘의원으로 정치에 지나치게 참여 하며

코뮌의 혁명 활동에 적극 가담하게 됨









코뮌이 정권을 장악하자 주동자들은 방돔 광장

나폴레옹 1세 방돔탑을 철거 해버림










1871년 5월 28일 베르사유군에게 파리 코뮌은 진압되었고

코뮌을 주도하던 주요인사 대부분이 프랑스 외로 망명하게 됨 



6월 7일 파리에 남아있던 쿠르베는 친구 집에서 체포 되었음









곧 군사재판이 열리며 쿠르베에게 비난의 화살들이 쏟아졌고

6개월의 형을 선고 받은 쿠르베는 생트펠라지 감옥에

투옥되는 치욕을 겪게 됨




새 정권은 나폴레옹 1세 방돔탑을 다시 만들기로 했고

금화 50프랑에 이르는 막대한 비용을 쿠르베에게 청구하게 됨









<오르낭에서 저녁식사 후 1849>


쿠르베는 파산을 면하기 어려워지자 1873년 7월 23일 스위스로

망명길에 오르게 되었고 ‘플뢰리에’라는 작은 도시에 정착하게 됨









<쥐라산맥_Stream in the Jura Mountains 1872-3>


“풍경화를 간단하게 그릴 수 있다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다
풍경을 그리는 사람들이 과연 그 풍경에 대해서
얼마나 많이 알고 그리는가" 




그러다 프랑스와 거리가 먼 ‘라투르드펠즈’로 거쳐를 옮긴 쿠르베는

봉포르라는 낡은 모텔을 구입해 그 곳에서 작품활동을 하며

남은 일생을 살다 고독하게 죽음을 맞이 함









<뉴샤틀 호수_The Lake Neuchâtel, 1875>




쿠르베는 죽을 때 이런 유언을 남겼다고 함

“내가 죽거든 자유의 규칙 외에는 어느 곳에도 소속되지
않았다고 말하라
나는 사회주의자일 뿐 아니라, 민주주의자,공화주의자,
혁명이 의미하는 모든 것의 지지자이고 무엇보다도 우선

나는 리얼리스트이다”










에필로그









<절망적인 남자_The Desperate Man 1844-45>


쿠르베의 이 자화상은 영국 가디언The Guardian지가 뽑은

‘정신나간 미술 베스트 10’

고흐 <귀를 자른 자화상>과 함께 뽑히기도 했음





쿠르베는 사실주의 화가였지만 자신의 자화상은

사실적으로 그리지 않았음



쿠르베가 “사실”이라고 말하는 “Realism”은 사물을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리는 사실적 표현이 아니라

인간의 삶을 꾸미지 않고 객관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말함









<파도와 여인_The Woman with Wave 1868>


사실주의적 표현은 화가들이 후원자들의 영향력에서 벋어나

자신의 사상과 예술 철학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게 되면서


이런 예술 풍조 변화는 인상주의로의 발전을 가져오게 하였음







TIP. 사실주의 미술과 사진



사진이 발명되기 이전 회화에서는 <카메라 옵스큐라>라는

보조 기구를 데생에 사용했음









카메라 옵스큐라는 이미지를 형성하는 장치로 화가들은

이 기구를 이용해 조그만 구멍이나 렌즈를 통해 들어오는 광선을

거울에 반사시켜 유리에 맺히는 상을 그대로 옮겨 그리곤 했음









이 같은 표현은 사실주의 화가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쳤는데

사실주의 화가들이 주창했던 ‘구체적 예술, 실제로 존재하는 것들'

에대한 관심이 1827년경 루이 자끄망테 다게르에 의해 고안된

다게레오 타입 사진기가 발명되면서 더욱 고조된 것임


그리고 사진이 현대 생활의 실상을 표현해 내는 예술 매체로

정착하기까지는 쿠르베와 같은 사실주의 화가들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한 것은 부정 할 수 없겠음








<가르강튀아_Gargantua 판화, 도미에 1831>



쿠르베의 작품은 이후 스냅사진의 효시가 되었고

도미에의 풍자화는 보도사진의 표본처럼 여겨지게 되었음


사실주의 회화와 사진은

<있는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를 표현해낸다>

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사실주의 작품은 현실을 단순하게 재현에 그치지 않았고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작가의 철학적 목적이 있었음










구스타브 쿠르베가 살던 시대는 프랑스 혁명 이후 왕권파와

공화정의 치열한 권력싸움이 있던 시기였음


계몽주의사상이 전 유럽을 휩쓸던 때이고 칼 마르크스 공산주의는

1847 <공산주의자 동맹>을 설립하며 세력을 확대하던

시기이기도 했음


계몽주의로 개인적 인간 삶에 눈을 뜨던 대중에게 산업혁명 이후

부를 쌓는 자본가는 빈부갈등 계급투쟁의 대상이 되었음


분노한 대중에게 공산주의-사회주의는 유토피아와 같은

이상향 처럼 보였을 것임


그러나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듯,

공산주의의 국가 이상은 1991년 소련의 붕괴와

북한의 경제위기로 허황된 꿈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

이미 증명되었음









150여년 전 프랑스에서 휘몰아 치던 이념의 계급 갈등이

대중을 선동하는 한줌의 조무래기들에 의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재현되고 있는 것이 안타까워서

이 글을 써봄









문화예술인은 자기분야에서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150여년 전 구스타브 쿠르베는 본인의 삶으로

2021년의 우리들에게 잘 증명해 보이고 있음


지금도 국민을 선동하려는 많은 연예인들의 미래모습이

쿠르베와 다르지 않을것 임..
 





오늘도 긴글 끝까지 읽어 주어 감사드림. THE END







세줄요약

1. 구스타브 쿠르베는 재능 있는 화가였음

2. 누드화도 매우 사실적으로 그린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화가임 

3. 선동의 재료로 쓰이다 버림 받고 불행한 말년을 보내다 디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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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전소장 에르 :) 2021. 3. 29.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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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finance.yahoo.com/news/new-york-excelsior-pass-covid-19-vaccine-passport-152722058.html



뉴욕, 주정부 차원에서 백신여권 발행 시작.
1차 2차 접종 완료하면 받는 건데
이거 있어야 식당, 카페, 공연장, 야구장,
볼링장, 비행기 탑승 등등이 가능해짐

아직은 시작 단계지만 미 전역에 확산될 경우
외국인도 백신여권 없으면 미국 못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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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전소장 에르 :) 2021. 3. 29.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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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스위스의 대기질 분석업체인 IQAir 에서 2020년 세계 대기질 보고서를 발표함

 

보고서 링크: https://www.iqair.com/ko/blog/press-releases/covid-19-reduces-air-pollution-in-most-countries

 

단위는 PM2.5 (㎍/㎥, 초미세먼지)

2020년 1월부터 12월까지 한 해 동안 초미세먼지 평균 농도임

 

아주 좋음: 0~10 ㎍/㎥

좋음: 10~12 ㎍/㎥

보통: 12.1~35.4 ㎍/㎥

민감한 사람에게 나쁨: 35.5~55.4 ㎍/㎥

나쁨: 55.5~150.4 ㎍/㎥

매우 나쁨: 150.5~250.4 ㎍/㎥

위험: 250.4 ㎍/㎥ 이상

 

 

2020년 세계에서 가장 대기오염이 심한 국가


 

1위 방글라데시

2위 파키스탄

3위 인도

4위 몽골

5위 아프가니스탄 

6위 오만

7위 카타르

8위 키르기스스탄 

9위 인도네시아

10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

.

.

.

14위 중국

41위 한국

51위 마카오

60위 홍콩

62위 대만

82위 일본

84위 미국

 

 

2020년 세계에서 가장 대기오염이 심한 수도


 

1위 인도 뉴델리

2위 방글라데시 다카

3위 몽골 울란바토르

4위 아프가니스탄 카불

5위 카타르 도하

6위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

7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사라예보

8위 바레인 마나마

9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10위 네팔 카트만두

.

.

.

.

14위 중국 베이징

33위 한국 서울

43위 마카오

53위 홍콩

64위 대만 타이페이

72위 일본 도쿄

84위 미국 워싱턴 DC

 

 

 

대륙별 대기오염이 심한 도시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


 

북미


 

오세아니아


 

남미


 

 

보고서에선 코로나19의 영향으로 2019년 대비 2020년 주요 도시의 대기질이 베이징 (-11 %), 시카고 (-13 %), 뉴델리 (-15 %), 런던 (-16 %), 파리 (-17 %), 서울 (- 16 %) 감소했다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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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전소장 에르 :) 2021. 3. 29.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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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23일....오늘 오전 9시

평양에서 오랜만에 비행기 한대가 뜸 

 


 

 

 

어디로 가나. 

 


 

 

여기로 가는군 

 


 

 

 

선덕비행장이네

 


 

 

비행기 정체는 정은이가 자주 타고다니는 AN 148

 


 

 

선덕비행장이면 미사일 쏘는 곳인데

 

 

 


 

 

미국이 가만히 있을까??    역시 아니군 

 


 


 

 Ronin31이 오키나와에서 출발해서 북쪽으로 올라 감.

 

 


 

 

Ronin 31.  보잉 E8c   Joint START 라고 부르는 정찰기

 


 

 

북한 이동식 미사일 발사대등 지상정찰에 특화된 정찰기. 

 

 


 

 

 

 

 

한줄요약.  오늘 아침 비행기 한대가 평양에서  선덕비행장으로 갔고,  오늘 저녁 미국 정찰기도 뜸. 정은이 미사일 쏘려고 간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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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전소장 에르 :) 2021. 3. 29.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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