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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를 되돌아보면

쇠락해가는 국운은 항상 전라북도에서 먼저 감지되었다.

조선시대 말기 탐관오리들이 가장 설치던 곳도 전라북도였고

동학 민란이 일어난 곳도 전라북도였다.

한국전쟁 당시 인민재판이 가장 활발히 일어난 곳도 전라북도였다.



전라북도는 채만식의 소설 탁류의 무대가 되었던 곳이다.

일제시대 당시 조선에서 손꼽히는 미두(米豆)장이 있었던 곳이고

수많은 조선인들이 이곳에서 자신의 인생을 망쳤다.

서해 바닷물이 짠 이유는 조선인들의 눈물이 모이기 때문이라는 말까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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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은 흘러 군산은 미두의 악몽을 떨칠 수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 발전 정책 덕분이었다.

박정희 대통령과 대기업이 '결탁'해서 탄생한 기업이 호남정유(지금의 GS칼텍스)이다.

경제민주화를 외치는 전라도인들이 왜 호남정유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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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텍스사 사장을 접견하는 박정희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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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새끼들 일자리 마련해줄 일만 생각하시던 어진 지도자 원조각하. 그리고 구인회 회장(맨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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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의 중심지 군산도 새로운 번영을 맞게 되었다.

2008년 건립된 현대조선소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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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2015년... 

한국에서 가장 강력한 강성노조 민노총 금속노조는 현대조선소도 파업에 동참할 것을 결정했다.

그리고 한국의 조선업은 빠르게 후퇴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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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열심히 하지 않은 돌대가리들 특징이 날짜 지키지 않는 일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른다는 점이다. 

그리고 노조처럼 야비하고 못 배운 쓰레기들도 없다.

'품질만은 제대로' 어쩌고 하고 떠들지만 - 품질이 좋아질 리도 없거니와 - 납기 지연하는 시점에서 이미 좃되는 거다.

그리고 자기들이 파업을 하는데 어떻게 경영진이 흑자를 내는가?

선수들이 플레이 자체를 거부하는데 팀이 지는 것이 감독 책임인가?



이렇게 한국 조선업이 몰락해가는 동안 중국이 무섭게 치고 올라왔다.

그로부터 1년 후, 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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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조선업은 수주 가뭄, 낮은 생산성, 구조조정 갈등이라는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었다.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구조조정이었다.
그런데 노조와 정면충돌을 두려워한 사측에서는 비정규직들을 우선적으로 해고했다.

파업의 주범이자 반기업 집단과 다를 바 없는 노조가 실권을 휘두르며 조선소의 생산성은 계속 낮아졌고 
노조는 갑자기 비정규직들을 챙겨주는 척하기 시작했다.
다가올 대선에 대비하여 정치 단체로서의 세력을 과시하기 위해서였다.

비정규직들은 정규직이 될 실낱 같은 희망 하나에 매달려 노조의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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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비정규직은 영원한 을이었고
정규직 노조들의 갑질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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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었다.
이제는 비정규직들을 수탈하는 것만으로는 메꿀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그리고 더 이상 현대중공업도 견딜 수 없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노조에게 흐리멍텅하게 굴던 정몽준이 "No more!"를 외치고 마는 단계까지.




2017년 2월...
아가리면 벌리면 상생을 외치지만 실제로는 자기들의 이권 밖에 모르는 비열한 노조는
다시 한번 파업을 일으켰다.
죽어가는 폐암 환자가 자기 힘으로 빨아들이는 마지막 흡연 한모금과도 같은 파업이었다.
운명의 순간은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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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5월4일 현대중공업은 군산 조선소 폐쇄를 결정한다.
상습적인 납기 지연과 품질 저하로 일감이 들어오지 않는 상황에서 도저히 게으른 노조를 먹여살릴 수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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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시민들과 전라북도인들은 모두 반발했다.
그들은 다시금 시위에 나섰다.





처음에는 '염원이다!' 같은 반말조로 훈계했다.
당시 촛불시위의 영향으로 민심이 명령하면 누구든 들을 것이라 착각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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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시장 원리는 개돼지들의 명령 위에 존재한다.
자기들의 '민심'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것을 알자 구호부터가 공손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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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다급해진 전라도인들은 정몽준을 전라북도 명예도민으로 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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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흥겹게 서울을 유람하며 재벌을 해체하라고 외치던 그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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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재벌과 함께 하고 싶다고 구걸까지 했다.
자기가 땅바닥에 뱉은 침도 마실 수 있는 야비한 전라도 근성 그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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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와서 감성에 호소해봤자 기업은 듣지 않는다. 아니, 들어주고 싶어도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 정도로 군산 조선소는 궤멸 직전이었다. 아니, 궤멸할 수 밖에 없었다.

이게 나라냐? 하고 준엄하게 꾸짖으면 누구든 자기들 앞에 굽신거릴 줄 알았던 그들이 마주한 것은
이게 운영 가능한 직장이냐? 는 차가운 현실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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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들이 믿을 수 있는 것은 "소통이 잘 되는 대통령" 문재인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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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문재인은 이미 이용가치가 사라진 전라북도인들의 뒤통수를 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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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을 기다리던 현실은 눈물의 똥꼬쇼가 아니라 눈물의 셧다운이었다.
2017년 7월1일부터.
5000마리의 개돼지들은 직장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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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곧 군산 셧다운 1주년이 다가오는구나.
그런데 지난 1년간 민노총이 당신들 챙겨주든가?
포기해라.
이제는 유람선이 뒤집혀 당신들 자식들이 모두 익사한다 해도 챙겨주지 않을 것이니.
그리고 전라북도의 자영업자들이 모두 서해에 몸을 던진다 해도 민노총은 최저임금을 계속 올릴 것이다.
1만원을 달성하면 2만원을 향해 투쟁하겠지.







전라북도인들이여,
노조가 설치다가 망한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그리스 같은 나라들의 이야기는
머나먼 나라의 이야기, 당신들에게는 해당될 일 없는 해외토픽으로만 들렸는가?
전라남도가 당신들을 형제로 여겨 구해줄 것이라 생각했는가?





어리석은 자들이여
저절로 깨어나는 악몽은 없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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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에는 바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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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이 지금 마주해야 하는 현실은 냉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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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바라보는 현실이 지옥으로 보이는가?
유감이다. 지옥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다.
그리고 거듭 말하지만 지옥에는 바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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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조선인들의 눈물이 흘러들어 짜게 된 서해바다는
2017년 이후, 어리석은 개돼지들이 흘리는
후회의 눈물, 그리고 분노의 눈물로 인하여 다시 한번 더 짜고 쓰디쓴 물이 될 것이다.







이것이 단지 일부 어리석은 전라도인들만의 문제일까?
그렇지 않다. 지옥은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이다.
군산은 시작에 불과하고 지옥은 점점 넓어지고 있다.
게다가 지옥 중에서도 가장 끔찍한 포퓰리즘 지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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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지옥은 죄를 지은 사람만이 가는 곳이지만
포퓰리즘 지옥은 설령 포퓰리즘을 지지하지 않았던 사람들마저도 집어삼킨다.
그리고 단테의 신곡 지옥편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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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andon all hope, ye who enter here
(여기 들어가는 모든 자들은 희망을 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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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전소장 에르 :) 2018. 5. 29.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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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에르의 생각발전소입니다 :)

이번 시간에는 도르파스톤이라는 것에 대해서 포스팅하고합니다.

우리 지구에는 그 당시 기술로는 절대 구현할 수 없는

물건들이 남아있습니다.

그것들을 " 오파츠 "라고 이름 짓고 부르기 시작했는데요.

오파츠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오파츠(Out-of-place artifact, OOPArt)는 미국의 자연주의자이자 미확인동물학자 이반 T. 샌더슨이 처음으로 주창한 용어로 역사학적, 고고학적, 고생물학적으로 불가능해 보이거나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물체를 의미한다.[1] 예를 들어, 그 당시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문명의 수준보다 한참 높은 수준의 물건이 발견되거나 인간이 존재하기 이전 시대에 "인간의 흔적"이 나오면 오파츠라고 부른다.

오파츠라는 단어는 주류 역사학계 및 과학계에서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보통 미확인동물학자, 고대 우주비행사설 신봉자, 젊은 지구 창조설자, 미스테리 마니아들이 주로 사용한다.[2] 오파츠라고 이름붙여진 물체들은 대부분 주류 과학으로 충분히 설명이 가능하거나, 사기로 밝혀진 비주류 의사 고고학이나 비주류 과학계의 것으로 나타났다.

오파츠 진짜설을 비판하는 측은 오파츠를 유물 해석을 잘못했거나 자기 희망 사항의 단정, 특정 문화, 믿음의 지식 및 이해 부족 등으로 만들어진 엉터리 결과물이라고 말한다. 오파츠 지지자들은 주류 과학계에서 고의적으로 혹은 무지로 거대한 지식 영역을 무시하고 있다고 말한다.[2]

오파츠의 일부 사례들 중에서는 부정확한 설명으로 불확실한 물체로 취급되버리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볼프세그 철은 완벽한 입방체로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각 길이 차이가 있다. 또한 클럭스도르프 구체는 완벽한 구로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델리의 철 기둥은 "녹슬지 않는 철"로 만들어졌다고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기둥 밑바닥 쪽은 녹이 슬어 있다.

기존 인류 역사에 대한 관점에 대해 의문을 가진 작가나 연구자들은 자신의 주장에 대한 근거로 오파츠를 이용하고 있다.[2] 창조과학에서는 고고학적 기록, 과학적 연대 및 인간 진화 모델과 창조과학 측의 주장 차이에 대해서 오파츠와 같은 비정상적 발견물을 근거로 사용하고 있다.[3] 선사 시대 종교가 고대 우주비행사설과 연관되었다는 주장, 사라진 문명이 현재 가지고 있는 기술과 개념보다 더 진보되어 있다는 주장을 하는 측에서도 오파츠를 인용한다.[2]





위의 세개의 오파츠는 정말! 오파츠가 맞다고 공식적으로 인정된 3대 오파츠들입니다 :)


이것들 말고도 많은 오파츠 혹은 오파츠 의심 아이템들이 꽤 있습니다.




  • 코소 인공물: 선사 시대 것으로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1920년대에 만들어진 점화 플러그이다.
  • 말라카이트 : 백악기 초반의 것이라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콜럼버스 이후의 무덤이다.
  • 볼프세그 : 3 것으로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초기 광산에서 부정확하게 입방체인 물건이였다.


1938년, 중국과 티벳 경계지역, 파안객랍 산맥의

인간의 접근힘든 곳에서 

치 푸 데(북경대 고고학자)가 이끈 고고학팀은 

인공물로 보이는 기이한 동굴에서

오늘날 학자들과 과학자들이 아직도

미스테리로 여겨지는 스톤 디스크를 발견하엿다.

 


 

기이한 유골들

 

여기에 그 디스크, 현대의 시디처럼 보이는,과 함께

기이한 인간형 유골이 발굴되었는데,

그것은 머리가 기이하게 크고 키가 작은 골격이었다.

 

처음 이들은 알려지지 않는 유인원으로 생각되었지만,

이어진 탐사에서 그들의 생각은 크게 틀렸음이 드러났다.

아니 경악하게 하였다.

먼저 동굴들의 잘 이어진 구조는

그들 유골 주인들이 유인원이 아님이 분명했고,

발견된 벽화 그림은

하늘의 천체도가 그려져 있었다.

바로 지구, 태양, 달, 그리고 행성들이 있었다.

 

이것은 그들이 문명인임을 보여준 것이엇다.

 

너무나 기이한 유물

 

그들 탐사팀이 지금까지 '가장 믿을수 없는 유물'로

부르는 기이한 디스크들이 발견되었다.

이 디스크는 직경 9인치, 두께가 6mm, 그리고

중앙에 직경 20mm 구멍이 있어

마치 현대의 컴퓨터 디스크처럼 보여졌다.

 

그리고 디스크는 표면에 홈이 나있었는데,

그것은 중앙에서 바깥으로 소용돌이처럼 나있었다.

 

그런데, 후에 이 디스크는 더욱 놀라운 사실이 밝혀지는데,

1970년 초, 중국 요청으로 이 디스크를 검사한 

러시아 과학자들은 그 디스크가

고수준 코발트와 타 금속들을 내포하고 있음이 발견되

크게 놀라게 되었다.

 

다시 말해 그것은 전기회로처럼 되어

현대 컴퓨터 디스크처럼 기억매체로 작용 될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잘 보존된 디스크의 연대를 조사한 결과

놀랍게도 BC 1만년에서 1만2천년이 나왔다.

이는 최대 유적 이집트의 대피라밋을 훨씬 더 오랜된 연대인 것이다.

 

그 동굴들에서 디스크들은 총 716개가

발견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 디스크들 다수가 

흠과 파손 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아쉽게도 2차대전 발발 이후,

이 미스테리 디스크들은 소리없이 사라졌다고 한다.

 

그런데, 그와 관련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2차대전 끝나 얼마후

폴란드 한 교수가 영국 과학자 칼 에반스에게

한 기묘한 스톤 디스크를 보여주었다.

그것은 북인도의 이상한 부족 드로파의 유물이라고 그 교수는 말했다.

에반스 박사는 즉시 그 이야기에 끌려 드로파 탐사를 시작하였다.

 

그러면서 엔반스 박사가 14대 티벳의 달라이 라마와

미팅은 전설적 이야기가 되었다.

 

 Dalai Lama with Dr. Evans 

 

어째든 티벳인들의 도움으로

인간이 닿기 힘든 파안객랍산의 미지의 드로파 부족을 만나게 되었다.

 

그가 그 부족에게서 들은 신기한 전설은

그들은 오랜 옛날  먼 우주에서 왔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 스톤 디스크는 외계에서 온

그들의 기술품인가?

 

이 스톤 디스크는 러시아 과학자들이 발견한 것처럼

전기적 기록매체라면

컴퓨터나 음악디스크 탐침같은 적절한 기기로

재생할수 있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그런 접근은 모두 실패하였다.

 

그리고 그나마 잘 보존된 디스크판에

기이한 상형문자들 같은 것이 있기도 하였다.

그것을 해독위해 20년간 수많은 전문가들이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고 한다.

 

이것에대해 일부는 우리가 시디에 붙인 

설명등 라벨 같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런데, 1964년 북경대학 언어학 춤 누이 교수가

그 스톤디스크에 상형문자들 해독했다고 발표하였다.

하지만 그의 연구는 전통적인생각에 너무나 반하는 것이었다.

이에 학회는 그의 논문발표를 금지 시켰고,

그의 주장은 외면 당했다.

 

그의 충격적인 해독에의하면

외계 거주자들이 탐사선으로 왔다가 

파안객랍 산맥에 추락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들 외계 생존자들은

당시 근처 인간들(현재 이웃 부족)에게 사냥당하거나 죽임을 당했다고

그 디스크에 기록되 있다는 것이다.

 

이 보고서는 어떤 면에선 너무나 현실적이고

기존 사고에 반하는 것이었다.

이에 4년간 금지된 그의 보고서는

겨우 완화되 공개되었지만,

전통 학계의 조롱거리가 되었다.

 

과연 드로파 부족은

고대 외계인들의 불시착한 후손들일가?

그리고 더욱 불가사의한 스톤디스크는

외계 기술의 기록물이라면 어떤 내용일가?

 

하지만, 그 이야기는 학계에서 푸대접이었지만

대중 미디어들(소설, 만화, 영화 등)에 커다란 영감을 주었다.

 

그러나, 그 스톤 디스크는

현재의 상식이로나 과학으로도

풀수없은 미스테리임은 틀림없어 보인다.

 

그런데, 이 미스테리한 스톤 디스크들은

기이할정도로 세상에서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1974년 오스트리아 엔지니어 에르스트가 

중국의 Banpo 박물관에서 두개의 이 디스크를 보고

사진 찍은 이후 이 곳에서도 사라졌다고 한다.


재밌게 읽으셨나요?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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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전소장 에르 :) 2016. 5. 16.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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