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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사병보다 더 큰 피해를 낸 전염병.



흑사병으로 봉건제가 무너진후 서양은

강력한 왕이 나라를 지배하는 절대왕정 시대를 맞이한다.

유럽국가들은 돈이 되는 향신료 무역에 참가하고,

식민지를 개척하기 위해 신항로 개척에 열을 올린다.




그 과정에서 에스파냐의 지원을 받은 탐험가 콜럼버스가 1492년,

아메리카 대륙에 첫발을 내딛게 된다.

그리고 뒤따라 수많은 탐험가들이 아메리카 대륙 곳곳을 점령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전염병도 아메리카 대륙에 상륙한다



 

그중 가장 강력한 전염병은 바로 천연두

신대륙 발견전에 유럽에서는 천연두가 한동안 유행했기 때문에,

유럽인들은 천연두에 어느정도 면역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외부와 교류가 없던 아메리카 원주민에게 천연두는 저승사자나 마찬가지.

천연두를 가볍게 앓고 있던 유럽인 탐험가나 군인을 통해

병원균이 아메리카 원주민에게로 옮겨가자 원주민들은 셀 수 없이 죽어 나간다.




 

천연두가 활약하면서 1억 명으로 추정되는 아메리카 원주민의 90%가 죽었다.

이는 흑사병보다도 더 큰 활약으로 천연두는 전염병 역사에 길이길이 기억된다.

천연두의 습격은 원주민들에게 실로 파괴적이었다.




 

오죽했으면 천연두 때문에 원주민이 다 죽은후 신대륙에 도착한 한 영국인이

'신이 우리가 가질 수 있도록 땅을 청소해 주셨다'라고 말을 할 정도

 




천연두가 아니었다면 유럽은 신대륙을 쉽게 점령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근대 전기의 전염병은

신대륙 발견과 천연두로 인해 규모가 전 지구적으로 넓어졌다.

이제 전 세계는 서로의 질병을 공유하고 함께 질병에 대한 면역력을 키우게 된다.

 



 

하지만 아직도 인간은 전염병에 대해 잘 알지 못했고

그래서 전염병의 전파 범위가 넓어지면 그 파괴력은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1800년대 사람들은 산업혁명을 통해 공장이라는걸 짓고 석탄을 이용하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도시로 모여들었고, 공장 폐수와 생활쓰레기로 환경이 더러워졌다.





또다시 인간들이 전염병에게 쾌적한 환경을 만들어 준 것



 

이때 바로 오염된 물을 통해 전염되는 콜레라가 등장한다.

사실 콜레라는 아주 옛날에 활발히 활동했던 전염병으로,

이때는 인도의 풍토병으로 거의 힘을 잃은 상태였다

하지만 영국이 인도로 진출하면서 콜레라가 다시 힘을 얻게 된다.




 

콜레라는 낯선 사람들의 몸속으로 침투했고

식민지 정복전쟁과 무역 등을 통해 전세계로 퍼져 나간다.




 

하지만 이런 콜레라한테도 약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깨끗한 물에서는 살 수 없다는것

위생만 신경쓴다면 확산을 막을 수 있는 전염병이다




 

하지만 산업화된 도시들은 그럴 형편이 되지 못했다

거리에 쌓인 오물과 생활하수가 결국 땅으로 스며들거나 강으로 흘러들었고,

사람들은 강물을 끌어다, 혹은 더러운 우물 물을 길어 마셔

한명의 콜레라 환자가 생기면 그의 배설물이 상수원으로 퍼졌고

다시 그물을 다른 사람들이 마시면서 콜레라는 빠르게 전파되었다





콜레라는 구토와 설사를 일으켜서 몸안의 수분을 다 빼앗아가 사람을 죽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전염병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지만

이때부터 인간들은 전염병을 극복하려고 뭔가 시도해 보기 시작한다.




 

에드윈 채드윅의 도시를 청소해서 콜레라를 잡을 수 있다는 주장에 따라

영국에는 공공의료법이 만들어졌고

도시청소를 시작해서 훗날 콜레라를 물리칠 수 있게 된다.




 

또한 존 스노는 오염된 식수가 콜레라의 원임임을 밝혀내고

영국에서는 체계적인 상하수도 시설을 만든다.

도시를 청소하고, 식수를 철저하게 정화시키면서 콜레라를 제압하기 시작.




 

또한 유럽의 여러 국가들과 미국도 영국을 따르면서 그 결과,

1890년대에 콜레라가 다시 많은 나라를 덮쳤을때 유럽과 미국은 거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전염병이 인간에게 밀리기 시작했다

 



 

근대 후기의 전염병은 여전히 강력한 힘으로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았지만,

사람들의 태도는 달라진다.




 

1865년 프랑스의 화학자인 루이 파스퇴르는 병을 일으키는 미생물을 세균이라 부르며

세균이 전염병을 일으키는 것을 증명해 냈다.

 



 

1882년에는 독일의 미생물학자 로베르트 코흐가

미생물과 질병의 상관관계를 시험하는 방법을 개발해냈고

콜레라를 일으키는 미생물의 정체도 밝혀냈다.




 

이후 수십년을 지나며 연구자들은

전염병의 원인, 전파 방식, 예방, 치료등에 관한 주요 발견들을 거의 해마다 쏟아냈다.

이렇게 전염병의 신비를 하나둘씩 풀어나가면서 현대의학은 눈부시게 발달한다.



1969년, 감염에 대한 개념을 발견한 지 약 100년 만에

미국 공중위생국장 윌리엄 스튜어트는 선언한다.

"전염병 질병은 이제 대부분 끝이 보인다."




 

인간들은 백신과 항생제를 이용해서

천연두, 결핵, 콜레라 같은 전염병들을 잘 막아냈고

사람들은 전염병을 정복할 수 있을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믿음을 굳혀가던 그때




 

아프리카에서 '에이즈'가 나타난다.

 



 

자연을 더 많이 이용하기 위해 사람들이

아프리카 밀림을 벌목하면서 밀림에 살던 원숭이와 접촉하게 되었고,

그때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이 된다.




 

또 사람들은 전염병을 정복할 수 있다는 낙관론에 사로잡혀

제 1차 세계대전 중 병영에서 유행하기 시작해,

전 세계적으로 5천만 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스페인 독감을 간과하기도 했다.




 

인간들은 최근 스페인 독감으로 죽은 에스키모 시체를 연구해

스페인 독감이 조류독감의 변종이라고 밝혀낸다.

조류독감은 인간이 조류의 생활 공간을 위협하면서 접촉하게 되자,

조류의 독감이 인간에게로 옮은 것




 

2003년 여름, 전 세계를 강타했던 사스도 야생 사향고양이를 요리해 이용하면서 생긴 병

인간이 탐욕을 채우려고 자연을 훼손하고 이용하려고 하는 한,

전염병은 결코 정복되지 않는다.

 



 

게다가 새로운 변종 전염병이 생기거나

사스가 항공기를 타고 일주일 안에 전 세계로 확산된 것처럼,

전염병이 인간의 편의를 위해 만든 빠른 교통수단을 타고 확산된다면.

이래도 과연 인간은 전염병을 정복할 수 있을까 ?

 



 

현대에 들어서 새로운 전염병의 등장은

전염병을 정복할 수 있다고 믿고 있던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게다가 신종 전염병들은 약도 안 듣도록 독해졌고, 더 빠르게 전파되고 있다.




 

하지만 의학의 발전으로 치료제가 개발되고

철저한 검역과 격리 등으로 인해 사람들은 신종 전염병의 확산을 억제하고 있다.

 



 

그 성과로 현대의 전염병은 과거의 흑사병이나 천연두처럼

세계역사를 바꾸어 놓을 만큼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지는 않다.

현대의 전염병은 분명 독해졌지만, 인류는 전염병에 잘 대처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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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전소장 에르 :) 2019. 10. 23. 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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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적 현상을 피할 수 없는 인간은 어쩔 수 없이 배설물을 처리해야만 한다.

그리고 이런 필요성으로 탄생한 것이 바로 '변기'.

 



건강한 사람들은 매일 평균 225g의 배설물을 배출한다자 그럼 여기에 세계 인구를 곱해보자

 72억 인구라고 한다면 매일 배출되는 사람의 배설물만 178만 톤에 이른다


대한민국 K-2 흑표 전차가 약 56톤 정도되니 비교해보면 아마 그 양이 어마어마하다는 걸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 엄청난 양의 배설물을 고이 모셔둘 수는 없는 일이라 어딘가로 흘려 보내거나 어떤 식으로든 처리해야 한다는 것.

 



그래서 과거 아시아 문화권의 농민들은 수세기 동안 공용화장실에 쌓인 배설물을 농작물을 위한 천연비료로써 이용했다


특히 중국은 4천 년 동안이나 인구 과열을 겪어온 나라인지라 

그 배설물을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에 대해 더욱 민감했으니 일부나마 농사에 이용하려 했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나아가 태국에선 사육하는 돼지의 먹이로 배설물을 활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배설물에 대한 서양권에서의 인식은 조금 달랐다


어떻게든 실생활에 활용하고자 했던 동양권에 비해 

서양권에서 배설물은 그저 냄새나고 더러운 무용의 쓰레기에 불과했던 것이다


동양권보다 서양권에서 일찍이 배설물 처리시설인 수세식 변기를 사용하게 된 이유도 이 때문이라 볼 수 있다.

 



우선 현대인들이 평균 5번 정도 이용하는 자기 소재의 '사이펀 변기'부터 알아보도록 하자


우리는 일상 속에서 매일매일 이 변기를 사용하고 있지만 이면에 다양한 원리가 숨겨져 있다는 사실은 모르는 경우가 많다.




변기 물이 내려가는 핵심 원리는 중력이다

6리터의 물이 바로 이 중력의 힘을 빌어 물탱크에서 변기통으로 흘러내리며 배설물을 밀어내게 되는 것이다


흔히 변기를 뜯어볼 때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앞서 말했듯 하나는 물탱크이고 하나는 변기통이다

그리고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부분은 바로 S자 커브 곡선의 배수관 구조이다.




자 반으로 잘린 변기의 내부를 살펴보자


배관공들은 이 S자 배수관의 경사를 흔히 '웨어'라고 부르는데 

이 부분이 변기 내에 고여있는 물의 높이를 일정하게 고정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우리가 아무리 변기를 사용해도 물 높이는 항상 일정하게 유지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리고 이 S트랩 배수관이 있음으로써 아래 하수관의 악취나 유독한 가스가 올라오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물론 변기 내에 일정량의 물이 더 들어가면 배설물과 함께 변기물은 웨어를 넘어가게 된다


용변을 보고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누르는 레버가 물탱크의 6리터 물을 

변기 테두리와 아래 분출구로 흐르게 하면서 변기통을 씻고 배설물들을 변기 중앙으로 모아 흘려 보내는 것이다.




이때 웨어를 넘어 흘러가게 되는 물에는 사이펀의 원리(Siphon Effect)가 작용하게 된다

사이펀의 원리란 이동경로가 내용물로 가득 차면 기압차와 중력이 작용하여 경로의 높이와 상관없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변기 물을 내렸을 시 변기통에 가득 차오른 수면에 작용하는 대기압은 변기물을 웨어 뒤로 넘어가도록 하는 흐름을 만든다

그러면 이 지속적인 물의 흐름은 배수관을 진공상태로 만들고 사이펀의 원리가 작동하게 하며 이로써 변기 내의 이물질들이 쓸려 내려가도록 한다


다시 말해 변기 내에 가득 찬 물이 웨어를 넘어가면 그 후로는 아래로 향하는 배수관에 중력이 작용하면서 

다시금 물이 일정수준이 될 때까지 계속해서 오물을 배수관으로 흐르게 만드는 것이다.

 



변기 표면이 도자기로 만들어지는 것 또한 나름의 이유가 있다

도자기는 기본적으론 점토 재질이지만 굉장히 밀도가 높아서 절대 물이 스며들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의미로 박테리아특정 유기체나 세균도 달라붙어 살 수 없는 환경이라는 말이다.




우리가 보통 쉽게 생각하는 변기는 이처럼 뜻밖의 정교함을 갖추고 있으며 

역사적으로도 여러 사회에서 지속적이고 혁신적인 시도가 있어왔을 만큼 인류 문명의 발전과 그 길을 함께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명의 발전에 있어 가장 큰 저해요소인 질병을 막기 위해 변기와 같은 위생 설비는 필수적이었으니까

실제로 소변 자체엔 세균이 없기 때문에 마셔도 상관없지만 대변은 얘기가 다르다.

 



대변은 75%의 수분과 10%의 소화되지 않은 음식물, 15%의 박테리아로 구성되어 있다


대변이 보통 갈색을 띄는 것은 몸 밖으로 함께 배출되는 죽은 적혈구 잔여물 때문인데 

여기서 빌리루빈(Bilirubin)이라는 물질에는 특히 엄청난 양의 박테리아가 들어있다


악취는 바로 이 수십억 개의 박테리아가 만들어낸다.

 



물론 대부분의 박테리아는 그저 소화를 돕는 무해한 세균들이지만 그중 몇몇은 매우 치명적이다

역사적으로 인간의 배설물과 관련된 질병으로서 악명 높은 것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그 첫 번째는 바로 콜레라(Cholera)

익히 알고 있듯이 극심한 탈수증세를 일으켜 하루 아침에 사람을 골로 보내기도 하는 무서운 질병이다




두 번째는 장티푸스(Typhoid Fever)다

심한 부기나 발진고열메스꺼움을 동반하는 등 다양한 증상을 띄는 질병으로서 굉장한 전염성을 보인다.

 



이처럼 문명의 발전은 배설물 처리그로 인한 질병과의 전쟁이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고대 변기에 대한 사례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우선 기원전 3000년 경 현재 스코틀랜드 북단에 위치한 스카라 브레(Skara Brae) 유적엔 원시적인 형태의 변소가 남아있다


각 집의 구석엔 낮은 칸막이로 마련한 공간과 땅을 파서 만들어 놓은 구멍바다로 통하는 나름의 배수관까지 있다

더불어 현대인과 마찬가지로 배설물을 물로 흘려 보냈다는 점에서 약 5000년 전에 만들어진 변소치곤 정교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사실 정교한 걸로 치면 지중해 연안 크레타 섬크노소스(Knossos) 궁전의 고대 변기에 비길 만한 것은 없다


대리석 좌석과 물탱크시대상으로 꽤나 훌륭한 배수 설비도 갖춰져 있으니까 말이다

물론 고대 로마인들이 들으면 섭섭할 소리지만.




로마가 번성할 수 있었던 수많은 이유 중 하나는 우수한 물 공급 체계와 배설물 처리 능력이었다


중산층에서도 제법 잘 사는 부류의 각 집에는 저마다의 화장실이 설치되어 있었고 

이 화장실들은 그들이 개발한 공중 하수 설비와 연결되어 오물들을 오수 처리장으로 보낼 수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용했던 것은 공중 화장실로 기록에 따르면 서기 315년 로마에는 144개의 공중 화장실이 설치되어 있었다

좌석은 긴 의자 형태로 아래에 흐르는 수로가 배설물을 흘려 보내는 구조였다.


특히 로마의 번영이 극에 달했을 당시에는 무려 420km 길이의 수로로 엄청난 양의 물을 도시에 공급할 수 있었으며 

노동자 계층의 로마인들도 하루 65L의 물을 소비할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러한 각 문명의 놀라운 배설물 처리 능력들도 종전에는 국가의 존립을 위협하는 요소가 되고 만다.




영국 엘리자베스 1세 통치가 막 시작된 시기

화려한 검술과 만돌린모리스 댄서들이 활약한 시대였으나 아직 변기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온 천지사방에 변이 가득했다

집 안팎을 가리지 않고 말이다


조금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닌가

수천 년 전 고대 로마에서도 수세식 변기를 사용했는데 하물며 16세기 중반 영국에 변기가 없었다니.

 



하지만 실제로 엘리자베스 1세 시대, 1500년대 후반에 들어서야 깨끗한 수세식 변기를 개발하려는 시도가 일어났다


그전까진 귀족들조차도 대충 돌로 만들어진 화장실을 이용했고 배설물을 성의 해자 등으로 그냥 흘려 보내곤 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최초로 만들어진 현대적 수세식 변기는 

1596년 엘리자베스 1세의 대자존 헤링턴(John Harington) 경에 의해 개발되었다


이름하여 에이작스(Ajax). 

옥외 변소를 뜻하는 제익스(Jakes)란 속어를 빗대 장난스럽게 부르곤 했던 명칭이었다.

 



기본적으로 이 에이작스 변기 위엔 나무 좌석이 비치되어 있었다

편하게 앉아서 변을 볼 수 있도록 말이다


그리고 용변이 끝난 후엔 손잡이를 당기면 뒤에 설치된 수조에서 물이 흘러나오며 배수관을 통해 배설물들을 정원으로 쓸어 보냈다.


당시엔 혁신적인 시도였다

일단 물은 고여있지 않더라도 변기통과 수조플래퍼 밸브까지 현대 변기의 기본적인 설비는 대부분 갖추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역시 배수관의 구조가 S트랩이 아닌 1자 구조였으므로 오늘날처럼 올라오는 악취를 막을 순 없었다.

 



존 헤링턴 경의 이런 혁신적 개발에도 불구하고 그 뒤로 수세기 동안 유럽인들은 제대로 된 수세식 변기를 사용하지 못했다

그저 뒤뜰에 구멍을 파고 돌로 벽을 쌓은 변소를 이용했을 뿐이다


런던 사람들 역시 캄캄한 밤을 대비해 침실에 요강을 구비해놓았으며 

아침에는 어김없이 '가디 루'를 외치며 배설물을 그대로 창 밖에 쏟아버리곤 했다


여기서 '가디 루' "Regarde l'eau!", '물 조심하세요!'란 뜻의 프랑스어에서 유래된 말이다.

 



차세대 변기가 개발된 것은 1775년 런던의 시계공인 알렉산더 커밍(Alexander Cumming)에 의해서였다


커밍의 수세식 변기는 하단부에 여닫이 덮개가 있어서 볼일이 끝나고 손잡이를 당기면 

이 덮개가 열렸다 닫히며 배설물은 흘러가고 다시금 변기통엔 깨끗한 물이 고이는 식이었다


더불어 커밍의 변기엔 S자 배수관도 마련되어 지독한 악취가 올라오는 것을 방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인 하수 시설은 아직 적절히 완비되어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따라서 정화조는 곧 오물로 넘쳐났고 많은 양의 부패한 배설물들이 땅 속으로 스며들었다

가정에서 버린 배설물 섞인 하수가 땅 속으로 스며들었기에 이제 이웃집나아가 온 마을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더구나 당시엔 배수관이 있었다 하더라도 오물이 향하는 곳은 결국 마을의 수원인 인근 강이었기에 

사람들은 전날 버린 배설물이 섞인 물을 스스로 마시는 꼴이었다.

 



그리하여 19세기 무렵엔 10명의 아이가 태어나면 성인이 되기 전 8명이 질병으로 죽어나가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바로 콜레라 때문에 말이다


콜레라는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이동해왔다

1832년엔 파리와 런던에 상륙했으며 1831~1832년 사이에 영국에선 약 5만 명의 사람들이 이 콜레라로 인해 사망했고 

파리에선 여름 동안에만 18,000여명이 사망했다


그리고 이 지독한 콜레라 전염병은 32년 같은 해 미국의 보스턴과 필라델피아에까지 이른다.

 



피어난 문명의 한 자락인 줄 알았던 수세식 변기의 발달은 이렇듯 되려 서양권 국가들에게 재앙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전염병 문제가 심각해지자 사람들은 단순한 발상에서 비롯된 해결책을 내놓는데 

오물을 씻어내기 위해 더 많은 물을 사용하자는 것이었다.

 



따라서 제정된 1848년 영국의 공중보건법

이는 영국인들의 각 가정마다 화장실과 변기를 설치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1858년 대악취 사건(The Great Stink)을 야기했다

해결책이라고 내놓은 법안이 문제의 근본인 하수 처리 시스템의 개선은 아예 건드리지도 못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영국의 1858년 여름은 유난히도 길고 더웠다

늘어난 변기에 의해 더욱 많아진 하수는 강둑에 쌓이기 시작했고 빠르게 부패해갔다


정말이지 그 악취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였다.

 



유례없는 충격을 안겨줬던 이 대악취 사건.


그 이후 영국 정치가들은 드디어 하수 처리 시스템에 눈을 돌렸고 

이윽고 주변 여러 나라들도 앞다투어 많은 비용을 들이며 효과적인 하수 처리 설비를 갖추게 되었다.

 



자 그렇다면 과거 배기차비행기 등 탈것 안에서의 용변은 어떻게 처리되었을까


항해하는 선원들의 경우엔 사실 따로 변기란 게 필요가 없었다

바다가 곧 변소요하수구였으니까


다만 변소는 항상 뱃머리에 마련되어 있었는데 그래야 오물들이 시시각각 부딪치는 파도에 즉각 씻겨 내려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이유로 선원들은 화장실을 헤드(Head)로 불렀다.

 



산업 혁명의 대명사로 통하는 증기기관의 개발로 등장하게 된 기차의 변소는 어땠을까


초창기 그레이트 웨스턴(Great Western Railway) 철도회사가 운영한 

1841년의 브리스톨-런던행 기차만 해도 내부엔 변기는커녕 화장실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이 부분에서 선두를 달린 것은 미국 철도사였다


바닥에 구멍이 있는 깔때기 모양의 용기를 설치하고 

배설물은 구멍을 통해 그대로 선로에 내다버리는 방식으로 기차 내에 변기를 마련한 것이다


달리며 배설물을 내뱉는 기차라니

꽤나 우스꽝스럽게 들리지만 미국 국영 철도회사 암트랙(Amtrak)에선 2000년까지 이 방법을 사용했다.

 



비행기 역시 마찬가지였다

초기 비행기의 변기는 밖으로 연결되는 호스를 부착한 깔때기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세계 2차대전이 한창이던 무렵엔 나름 변기통 모습을 갖춘 양동이로 대체되었다.


이렇듯 그냥 밖으로 배설물을 내다버리던 원시적인 방식의 변기에 변화가 찾아온 건 화학기술과 진공시스템의 진보 덕분이었다




착륙시까지 정화조에 배설물을 보관해두는 방식이 마련되면서 가장 큰 문제로 떠오른 것은 올라오는 악취와 똥물을 역류하게 하는 난기류였다.


그런데 진공 시스템이 잔여물 없이 깨끗이 변기 내 배설물을 처리해 정화조에 보관될 수 있도록 해주었고 

화학 약품이 다시금 변기를 씻어줌에 따라 악취 문제 또한 해결해주었다.




사실 오늘날 비행기에서는 일정 고도에서 생기는 외내부의 압력 차를 이용하여 

따로 진공모터를 쓰지 않고도 배설물을 처리하고 정화조를 진공상태로 유지한다.




마지막으로 우주 비행선은 어떤 형태의 변기를 갖추고 있을까

우주선의 변기는 기본적으로 앞서 살펴본 배기차비행기의 변기와 배설물 처리 원리부터 그 궤를 달리한다


왜냐고알다시피 우주 한복판에선 인위적으로 만들지 않는 한 중력이란 게 존재하지 않으니까.




그래서 1962년 나사는 월풀(Whirlpool)사에 이 문제의 해결을 의뢰했다


그리고 3년에 걸친 연구와 실험을 통해 개발된 우주비행사용 변기는 두 개의 비닐주머니였다

하나는 소변다른 하나는 대변을 처리하기 위한 용기였다.

 



소변의 경우엔 처리에 있어 별다른 불편함이 없었다

용기에 소변을 본 후우주선 내에 설치된 구멍을 통해 그대로 내다버리면 됐으니까


그러면 소변은 방출된 그 즉시 수천 개의 작은 얼음 알갱이로 변했는데 

무서울 정도의 냉기가 지배하고 있는 우주 공간 특유의 성질 때문이었다.

 



헌데 어처구니 없게도 이 작은 얼음 알갱이들에 빛이 반사되면 놀랍도록 아름다운 장면이 연출되곤 했다


그래서 1965년 발사된 제미니 7호의 우주인들은 자신들 소변이 우주 공간에 배출되는 것을 지켜보며 유리온(Urion)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소변을 뜻하는 Urine에 별자리인 오리온(Orion)을 합쳐 만든 그들만의 은어인 셈이었다.




그러나 대변은 경우가 좀 달랐다


일단 용변을 보면 비닐주머니를 화학살균제를 함께 밀봉한 뒤 잘 섞이도록 대변을 밀가루 반죽마냥 한참 주물러줘야 했던 것이다


게다가 비닐을 엉덩이에 밀착시켜 대변을 모은다는 게 보통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본인의 대변이 우주선 내를 둥둥 떠다니는 불상사가 일어나곤 했다.




실제로 얼마 전, 'NASA's Turd'로 지칭되는 

아폴로 10 '미확인 배설물체 사건'이 기록된 기밀 문건이 공개되며 세계인들의 웃음을 산 일이 있었다.



CONFIDENTIAL "기밀 문건"


CDR (Thomas P. Stafford) : Oh - Who did it? "아 누가 싼 거야?"

 

CMP (John W. Young) : Who did what? "누가 뭘 했는데?"

 

LMP (Eugene A. Cernan) : What? "뭔데?"

 

CDR : Who did it? (Laughter) "누가 싼 거냐고" (웃음)

 

LMP : Where did that come from? "저게 어디서 나온거야?"

 

CDR : Give me a napkin quick. There's a turd floating through the air.

"누가 빨리 휴지 좀 줘여기 똥이 둥둥 떠다니고 있다고"

 

CMP : I didn't do it. It ain't one of mine. "내가 싼 거 아냐저 똥 내 것이 아니라고"

 

LMP : I don't think it's one of mine. "내 것도 아닌데?"

 

CDR : Mine was a little more sticky than that. Throw that away.

"내 것은 좀 더 끈적끈적해일단 저거 빨리 버려"

 

CMP : God almighty. "아 씨발"

 

SC : (Laughter) "웃음"




1973년 스카이랩(Skylab)이 발사되면서 나사는 WCS(Waste Collection System), 좀 더 변기다운 변기를 선보인다


진공청소기의 원리를 이용해 대변을 빨아들여 저장 탱크에 담도록 하는 변기였다

그리고 스페이스 셔틀 시대에 이르러서는 보다 완벽한 진공청소기식 우주 변기가 등장했다.




오늘날 우주 변기는 좀 더 부피를 줄이기 위해 수거한 대변을 진공 건조시키는 기술까지 접목되어 있으며 

이를 통해 우주비행사들의 건강상태를 검진하기도 한다


물론 우주비행사들이 머무는 공간은 어디까지나 우주이므로 직접적인 변기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성인용 기저귀나 선외활동 우주복에 설치된 소변 처리 장치를 이용하는 일도 적지 않다.




이렇듯 우리는 우주에서조차도 변기 없인 살아갈 수 없다

하지만 보통 화장실이나 욕실 좀 쓰겠다고 말하지 당당히 변기 좀 쓴다고 말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상식적으로도 욕조보다야 변기를 쓰는 일이 훨씬 많은데 영어조차 Bathroom이라 칭하지 Toilet-Room이라고 부르진 않잖아?




그렇다면 이토록 용변 보는 일을 사적이고 금기시하는 풍토는 언제 형성된 것일까


적어도 19세기 전엔 이런 문화가 전반적이지 않았다


남녀구분도 없고 특히 활성화되어 있었던 고대 로마의 공용화장실을 제외하고도 

여러 문화권에서 여러 좌석이 딸린 옥외 변소가 발견된 바여러 사람이 함께 용변을 보는 일은 이상할 게 없었던 것이다.

 



조금씩 변화가 생긴 것은 바로 영국 빅토리아 시대(Victorian Era : 1837~1901). 


이 시기를 거치며 사람들은 신체에 대한 얘기조차 금기 사항으로 여기게 되었다


그 여파로 도서관에서 남성과 여성 좌석이 따로 나눠지는 일도 있었으며

개인 화장실에 대한 욕구가 증대함에 따라 20세기 초 집집마다 화장실이 생기는 데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자연스러운 생리현상에 대해 부끄러움을 표출하는 일은 동양보다 서양권에서 훨씬 심했다


화장실용 휴지가 처음 판매된 1895년 스콧 페이퍼 컴퍼니(Scott Paper Company)의 스콧 형제도 

제품 이름이나 홍보에 변기에 관련된 언급은 일절 하지 못했던 것이다.




대중문화의 영향도 지대했는데 20세기 내내 미국 방송국에서는 스쳐서라도 변기에 관련된 내용은 절대 다루지 않았다


실제로 1960 NBC 'The Tonight Show' 진행자 잭 파(Jack Harold Paar)가 변소(Water Closet)라는 말을 사용하자 방송사 측에서 이를 삭제해버렸고 

1970년대 드라마 'All in the Family'가 히트를 칠 때까지 텔레비전에선 화장실 물 내려가는 소리조차 방영되지 않았다.

 



게다가 사실 영어권에서 변기를 뜻하는 완곡한 표현

'Toilet'도 19세기 특별한 행사가 있는 날을 위해 아침 세수부터 옷 입는 것까지 이 모든 과정을 뜻하는 단어에서 유래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빅토리아 시대의 변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지금도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분명한 건 변기는 역사적으로 어떤 식으로든 인류 문명과 함께해 왔으며 

우리 삶에 있어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물건이라는 것이다


앞으로 또 어떤 기술이 발전하며 새롭게 변모할 지는 알 수 없지만 

먼 미래에도 변기는 우리와 함께할 것이다.






긴 글 읽어줘서 고맙다


자료 출처는 NGC, 구글 이미지




3줄 요약

1. 역사적으로 인류에게 있어 배설물 처리 시설은 필수적이었다.

2. 따라서 차츰 변기가 개발되었고 이는 여러 운송수단에까지 설치되었다.

3. 변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팽배해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기는 언제까지나 우리와 함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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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전소장 에르 :) 2018. 12. 6.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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