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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마르티알리스는 그의 책에서 

콜로세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집트인들아 피라미드를 자랑하지 말라.

바시리아인들아 바빌론을 입에 담지 말라.

황제의 새 원형경기장 앞에서 그

것들이 설 자리는 없으니.

모든 명성은 이를 위한 것.

모두가 이 그림자에 가려지리라.

 

로마의 콜로세움은 서기 70년경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에 

의해 건설이 시작되었으며, 80년에 건축이 끝나 100일 

축제 기간 동안 그의 아들인 티투스 황제가 개막식을 

올렸다. 

날이면 날마다 진귀한 구경거리가 가득했던 콜로세움. 

그곳에서 과연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한번 알아보도록 하자.

 

1. 해상전투(나우마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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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기 어렵겠지만, 콜로세움에서는 모의 해상전투도 

벌였다고 한다. 콜로세움의 100일 축제를 기록한 

시인 마르티알리스는 그날의 현장을 이렇게 증언하고 있다.

"먼 곳에서 처음으로 이 성스러운 공연을 

보러온 당신. 바다 같은 물, 배들의 전쟁, 

놀라지 마라. 이곳은 원래 육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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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세움의 해상전투는 정말 사실일까? 

콜로세움 내부에는 석재 구조물이 있는데, 

이걸 치우고 물을 채운다음 해상전투를 치루고 

다시 물을 빼낸 뒤 석재 구조물을 다시 세워서 

무대를 만들어 검투 경기를 치루는 게 

과연 하루 만에 가능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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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연구결과 콜로세움 내부의 석재 구조물은 

도미티아누스가 확장 공사를 할 때 세워졌었고, 

티투스 당대엔 나무판자와 기둥으로 임시 무대를 

설치하는 식 이었음이 밝혀졌다. 

즉 무대를 치우고 물을 채우는 식으로 

운용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고 해도 의문이 생긴다. 콜로세움의 해상전투를 

위해서는 약 470만 리터의 물이 필요했다고 한다. 

이는 올림픽 수영장 두 곳을 채운 것과 같은 양이다. 

고대 로마인들은 이 많은 물을 어떻게 옮겼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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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들은 물을 나르는 기술이 매우 뛰어났다. 

80km이상 떨어진 산 속의 샘에서 로마까지 

11개의 수로를 통해 깨끗한 물을 운반했다. 

또한 이 수로는 콜로세움에 물을 조달하는 

수단으로도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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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콜로세움 내에 100개가 넘는 음수대가 설치된 

것으로 보아 수로가 연결되어 있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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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세움에 물을 공급하는 급수로는 40개가 

발견되었고, 물을 빼는 배수로는 4개가 발견되었다. 

따라서 한시간만에 물을 채우고 한시간만에 빼는 것이 

가능했던 것이다. 

실제로 로마에 뇌우로 인해 콜로세움에 300만 리터의 

물이 쏟아진 날, 빗물은 배수로 한 개를 통해서 

두시간만에 모두 빠져나갔다. 

배수로 네 개를 사용하면 한 시간 내로 

물을 모두 빼낼 수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많은 학자들은 현재 고대의 기록대로 

콜로세움에서 모의 해전을 벌이는 것이

가능했을 것이라 말하고 있다.​

원래 모의 해전이란 전쟁의 승리를 기념하던 

행사로 강이나 호수에서 병사들이 해전을 

재연하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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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콜로세움 안에서의 해전은 범죄자나 

노예들을 배에 태워서 한편이 모두 죽을 때 까지 

싸우는 피비린내 나는 구경거리로 전락하였다. 

그들은 행사가 아니라 실제로 

살아남기 위해 싸웠던 것이다.

400년간 콜로세움에서 희생된 사람의 수는

100만명으로 추측하고 있다.





2. 맹수 사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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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일 축제에 등장한 또 다른 인기 종목은 

맹수 사냥이었다. 경기장에 맹수를 풀어 놓고, 

사람들과 싸우게 하는 것이 경기 내용이었다. 


동물들은 죽은 후 그냥 버려지지 않았다. 

가죽은 시민에게 선물 되었고, 고기는 이후 진행될 

경기를 위해 우리에 갇혀있던 맹수들에게 먹이로 

주어졌다. 남은 버려진 뼈들은 후에 콜로세움 

하수구에서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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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세움 제2전시실에 보존되어있는 이 뼈 중에는 

로마일대에 서식하지 않았던 열대 동물의 뼈들도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동물들은 과연 어디서 온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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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로마 제국은 그 영토가 북쪽으로는 

스코틀랜드, 남쪽으로는 지중해를 휘돌아 이집트까지 

걸쳐있었다. 그 광대한 지배권역에서 북아프리카에선 

코끼리, 누비아에선 하마, 메소포타미아에선 사자 등 

수많은 지역에서 동물을 인수해 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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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세움의 경기에 쓰인 동물들은 대단히 중요한 

상징성을 띠었다. 이 경기는 당시 문화적 차원의 

기능을 담당할 분만 아니라, 동물들을 정복함으로써 

로마가 정복한 도시들을 환기하는 것이기도 했다. 


로마가 더 멀리 진출할수록 더 이국적인 동물들을 

데려왔고, 이는 로마의 힘을 과시하는 효과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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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에 따르면 100일 축제 중 첫날에만 죽은 맹수의 

숫자는 무려 5,000마리였다.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규모의 축제가 100일 동안이나 계속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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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기술자들은 도르래의 원리를 이용, 승강기를 만들어 

동물을 지하에서 무대로 올릴 수 있었다고 한다. 




3. 검투사의 목숨을 건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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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세움 경기장은 원형인데 이는 검투경기에 

적합하게 만들기 위해서라고 한다. 


검투사는 구석에 몰리면 얼마 못가 목숨을 잃게 된다. 

원형 경기장에서는 공간을 더 넓게 쓸 수 있으니 경기가 

더 오래갔을 것이다. 원형경기장의 독특한 형태에는 

군사력, 제국의 정복과도 관계가 있다. 


5만 명에 이르는 관중이 원형경기장에 모여 소리를 지르며, 

자신들이 세상에 중심에 있는듯한 자부심을 느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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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결이 끝나면 승자는 패배한 검투사를 죽여야 할지, 

혹은 살려야 할지에 대한 관중들의 결정 혹은, 

황제가 그 자리에 있다면 황제의 결정을 살폈다. 


오늘날 매우 유명한, 엄지손가락을 올리거나 

내리는 제스처를 통해 이러한 결정이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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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검투사들은 노예, 전쟁포로 등의 출신이었으나 

그들은 엄청난 인기스타였다고 한다. 

그들의 땀은 향수로 만들어져 팔리고 

여자들은 돈을 내면서 검투사를 만났다. 


이러한 기록들을 보면 검투라는 종목이 콜로세움뿐만 

아니라 로마 전역에서 얼마나 인기 높은 종목이었을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4. 신화 재연 (이라 쓰고 공개 처형쇼라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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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세움에서는 신화나 전설, 역사적인 사건들을 

재연하는 공연도 펼쳐졌다. 


구체적인 예로는 자신을 화장하는 장작더미 위에 

산 채로 타 죽은 헤라클레스, 리라를 연주하다 

술 취한 여인들에게 갈기갈기 찢겨 죽은 오르페우스, 

로마초에 자신의 팔을 태워서 로마에 충성심을 보인 

전설적인 영웅 가이우스 무키우스 스카이볼라의 

이야기 등이었는데, 모두 분장한 노예들이 완벽하게 

(어떤 의미인지는 모두 짐작하시리라 믿는다...)

그들의 운명을 재연해 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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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이카로스 역을 맡은 죄수가 날개를 잃고 

추락해 온몸이 뭉개지는 공연도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공연의 목적은 젊은이들에게 산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서였기 때문에, 16세 이하의 어린이들에게도 

관람이 허용되었다고 한다.





5. 기타 다른 공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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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세움에선 항상 치고 박는 싸움만 한건 아니었다. 

동물들이 재주를 부리거나 하는 등 현대의 서커스와 

같은 공연도 이루어졌다고 한다. 


기록에 따르면 코끼리가 황제 앞에 와서 무릎을 꿇는 

공연도 있었으며, 코끼리, 호랑이, 악어, 하마, 기린 

등등 로마 시민들이 평소엔 볼 수 없는 신기한 동물들이 

콜로세움 안을 한 바퀴 돌아 행진하는 

사파리 같은 공연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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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전소장 에르 :) 2018. 4. 27.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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