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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팟을 다른 기기에 연결할 때 종종 연결 문제가 발생하고는 합니다.

There is several connection issues occurred when you tried to connect your AirPods with other devices.

그럴때의 대처법에 대해서 다뤄보고자합니다.


방법 1) 에어팟 재등록 및 리셋.

Method 1) Re-register and Reset Your AirPods

이미 등록된 에어팟을 제거해야합니다. 

To do this, You may have to remove(Un-register) your AirPods from connected devices.

'Remove' 클릭으로 기기를 제거합니다.

Mouse right-click then click 'Remove'

그 후,

Then,Hold AirPods next to to iPhone

에어팟을 페어링 모드로 바꿉니다.

Switch your AirPods as Paring Mode

-페어링 모드 진입법

-How to get into paring Mode.

1. 케이스를 엽니다.

1.Open Your AirPods case.

2. 케이스 뒷면 버튼을 누릅니다.

2. press paring button back of AirPods case.

3. 상태불이 하얀색으로 바뀝니다.

3. states light will turn into white color from red(green) light.

4. 진입 성공

4. accessd paring mode.


이제 사용할 기기에 에어팟에 등록할 차례입니다.

Now it's time to register your AirPods to devices which you want to connect with AirPods 

기기의 블루투스 모드를 켜신 후,

turn bluetooth on at your devices.

블루투스 환경설정에서 보시면 등록가능한 디바이스 목록에서 

open Bluetooth setting panel then you can find AirPods on list the you can connect.

등록하고자하는 에어팟을 찾으실 수 있습니다.


'Connect'를 누르시면 페어링 완료.

then click 'Connect' to pair



문제2) 맥북을 핫스팟 모드로 사용과 동시에 에어팟 사용시 끊김 문제.

matter 2 ) AirPods unstable connection while turning internet sharing on Mac

방법) Internet sharing 탭에서 'Wi-Fi Options...'를 클릭하여 옵션을 변경하여야 합니다.

method ) preference -> sharing -> internet sharing -> unlock locker -> click 'Wi-Fi Options'

보시면 1,6,11과 36,40,44,48의 채널 숫자들이 있습니다.

now you can see numbers of channel tab.

1,6,11은 2.4GHz를 의미하며,

1,6,11 are mean 2.4GHz,

36.40.44.48은 5GHz를 의미합니다.

36.40.44.48 are mean 5GHz.

가정용 무선 인터넷 공유기를 보유하고 계시다면 2.4GHz , 5GHz는 익숙하실텐데요,

if you have wifi device at home then ' 2.4GHz , 5GHz ' might be familiar to you.

문제는 2.4GHz로 설정 후 다른 기기에서 노트북의 핫스팟으로 붙으면

2.4GHz signal interrupts bluetooth signal when other device using Mac's internet signal.

무선 신호끼리의 간섭 때문인지 에어팟의 연결이 불안정하며 수시로 끊깁니다.

그럴땐,

5GHz 채널대로 재설정해주시면 됩니다.

you may want to change Wi-Fi channel as 5GHz from 2.4GHz for avoiding interruptions between bluetooth and internet sharing.


그 후에는 원활히 작동하는 에어팟을 보실 수 있습니다.

Then it would works f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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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전소장 에르 :) 2019. 1. 11.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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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압이니깐 


선요약 

1. 관리부실로 인한여 IMF행.

2. 과도한 IMF관리를 받았고 체질개선.

3. 조선영화는 거르자.



먼저, 팩트를 까고 시작하자.





우리나라는 국가부도. 즉 모라토리엄은 발생하지 않았다. 

외환이 부족하였고 필요이상의 과도한 IMF관리를 받았다.

 

제작비 70억짜리 저예산 영화는 음모론적 시각에 기반하여 반기업,재벌정서+반관료+반미국를 

버무려서 IMF를 맞은것을 제외하곤 전부 가설이니 개똥같은 영화제목은 잊고 시작한다.


영화 빅숏과 국가부도의 날을 비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기본적으로 빅숏은 시장의 버블을 파악, 반대매매를 한 

투자자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투자재난 영화라면 국가부도의 날은 그냥 비교대상 급이 아니다. 

음모론은 대안이 아니라 비판이며 선동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음모론을 퍼트리는 유명인들이 방송에 출연하고 주목을 받으며 흑백논리를 펼쳐가니 개돼지민국에선 더욱 먹혀들게 된다.


IMF시절에 대한 기억은 30대이상, 공부좀한 학식정도만 어느정도 알꺼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어디서부터 시작할까

고민을 하다 그냥 가능한 카더라나 음모론적인 부분은 없애고 알려진 사실만으로 풀어갈께.





위기의 시작


개인적 시각은 각각 다르겠지만 내가 생각한 어긋난 출발은 77년 닉슨정부에서 준비없이 넘어간 카터정부라고 보는데 

쇼짱은 노래라도 잘불렀지 바보병신 카터는 이전까지 미국이 가지고 있던 세계 영향력을 하나하나 잃어가고 

오일쇼크로 미국 제조기업들이 무너져갔고 위기는 기회! 

스시국은 미국의 자동차,가전산업등에 영향력을 키워갔어.


결국, 바보병신 카터는 재선에 실패하고 로널드 레이건이 등장. 

로널드 레이건은 곧 '레이거노믹스'라는 경제정책을 시행하면서 세금은 인하,정부지출 삭감,규제철폐,통화공급 억제등을 

펼치면서 미국 신부흥기를 만들어가. 


그런데 환율덕분에 그동안 고도성장을 하며 재미를 본 스시국이 무역과 미국산업 영향력에 

심각한 점유를 보여 계속된 압박끝. 결국 스시국은 85년 '프라자합의'를 채결. 엔화절상을 하게되었고

엔화절상은 곧 수출로 커왔던 스시국의 경쟁력이 악화가 되는 상황이 되었어.



남의 고통은 우리의 행복 


스시국의 빈자리를 곧 한국과 대만,홍콩,싱가폴이 차지. 

급성장을 하게되었고 '아시아의 4마리 용'이라 불렸어. 

참고로 저 용어는 일본언론에서 처음 사용.


그렇게 일본의 빈틈을 치고 들어가 미국시장을 기반으로 세계사에 유례없던 성장과 


그를 뒷받침한 국민성+국가정책으로 거의 10여년간 초고성장을 하면서 국민 절반이상이 흔히 말하던 중상층, 


먹고살만한 서민이란 의식속에 해외여행이란것도 좀산다싶으면 다니게 되었고 

각종 프로스포츠와 문화가 급발전하였여. 자고로 경제가 발전해야 문화,스포츠도 함께 발전을 하는법.


그와 반대로 프라자합의이후 경쟁력확보를 위해 스시국은 자국의 저금리를 이용.


투자와 산업체를 동남아지역으로 옴겨갔는데 주요 나라는 태국와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였고 


자국의 저금리를 이용하여 자국과 동남아시아 지역에 부동산을 사들이며 스시버블을 키워나가게 되었어. 


재미난건 스시국조차 포기했던 필리핀. 자피노가 급증하던 시기였어. 


영원한 떡국



일본의 분위기에 이어 일본이 하면 뭐던지 따라하던 소득이 늘어난 조선도 빚내어 국내 부동산에 투기를 하기 시작했어. 


소비를 받아줄 새로운곳 즉 홍대,강남,압구정,청담동등이 핫플레이스로 자리 잡으며 오렌지족과 서태지같은 새로운 세대들이 주류로 탄생.





변화의 시기



그렇게 너도나도우리도 해보자 각잡던 시절에 세가지 중요한 변화가 생겨나 바로 


소련의 몰락 

침대위의 킹 민주당의 빌 클린턴옹 당선

그리고 민주팔이 문민정부 땡삼이 당선



민주당은 친IT, 친월가의 인맥과 정책들로 또한번의 미국경제의 호황을 이끌어 나가는데 

여기서 슈퍼301조 행정부활과 금리인상을 확 올려버려. 

말그대로 시장소통없이 기습인상으로 글로벌 자금의 의도적인 쏠림현상을 만들어 버렸고 

94년 멕시코가 바로 아몰랑 IMF콜 ㄱㄱ




바보 03


마! 내가 군사정권도 끝냈고 보통사람도 끝냈고 어제께도 민주화도 끌어냈고 갱재는 뭐..모르겠고 마 내가 다했어! 


오르지 민주적 정책에 힘쓰다 80년대말부터 이어져가던 노조 총파업에 정권안정을 위해 달래기를 하다보니 말그대로 

노동시장의 조정을 놓치게되고 취약+방만한 운영을 하던 기업이나 금융시장에 자금조달이나 리스크관리에 허점이 

넘처났던 은행들과 가계대출은 유동성 위기가 왔을경우 엄청난 위기가 오는건 당연한 환경이었어.


국부의 씨앗과 원조각하의 노력, 땅크성님과 물태우성님이 만든 경상수지 흑자에 취해 95년 세계화 선언후 OECD가입후 

선진국뽕과 자유와 민주국가임을 보여주려다 WTO 자유무역체제에 급맞추려다 보니 현실과 엇박자가 생겨나. 

(사실 95년을 기점으로 사회 여러곳에서 호황신호는 끝물)



그림게이 어디갔노?


잔치는 끝났다


당시 정부의 고정환율제는 외환보유고를 급격하게 탕진하게 되는데 

금융시장+정부, 제2금융인 종금사의 엄청난 단기 외환자금거래등 쌍팔년도식 방만한 관리와 제도적 헛점. 


국내 30대기업들은 평균부채비율 514%상황에 매출로 대출을 받아내는 식이었고

'상호채무보증'을 통한 가공의 자본으로 묻지마 성장위주에 당연시하던 분위기였어. 


여기서 외환관리에 큰헛점을 드러나게 되었는데 이당시 수출입관련일을 했던 

어르신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다수가 미국,일본등의 환율,금리차이를 이용해 종금사 직원을 끼고 

환차익 거래를 너도나도 해왔던 말그대로 구멍가게 관리수준이었어.

 

그러한것을 정부에선 별다른 관리가 없었기에 경상수지가 적자가 되어도 외환관리에 손을 놓았다는점.

사실 7~80년대의 확장팽창식 부채주도 성장이 통하던 시기를 벗어난 시대임에 불구하고 

90년대중반까지 왔다는게 후진국스러운모습이었어. 노동시장의 유연성은 지금도 문제가 심해.


삐걱거리는 미국과의 관계로 경상수지에 적자지속 사회 각종 큰사건사고등 

여러곳에서 큰사고들이 줄줄이 발생. 말그대로 나라에 적신호가 들어왔던 시기. 

외화가 갈수록 떨어져 가면서 사실이쯤에 대기업들 부도위기가 다가 오고 있었어.





국정관리의 부실


그렇게 주제모르고 나서다 독도문제,미국과 고정환율,교역문제등등 동맹들에게 엑으엑엑 당하고 

할줄아는건 민주팔이뿐인 03은 언젠가는 시행했어야 하는 금융실명제와 부동산실명제등 

좋은면도 있었지만 임기중반이후 주택경기 활성화와 규제완화를 펼쳤는데 주택가격과 토지가격인 

연평균 -3%이상 폭락해버려. 


심지어 주택건설예산을 지방자치단체에 부담했으나 예산이 확보되지도 않았고 대안도 없어 

전국토가 투기장으로 변해버리고 난개발이 난무하게 되면서 경기침체 신호가 들어오기 시작해 

여기에 북한문제로 해외투자자들이 투자금을 회수는 덤.


나는 외환부족의 위기로 IMF가 왔다라기 보다는 높은부채의 기업들과 허술했던 관리의 정부, 

대선을 앞둔 여야의 혼선, 법안처리의 지연등등이 있었으나,

가장큰 문제는 구조조정.노동개혁을 DJ가 전라도+ 노조+좌파들을 결집하여 정책 지연시킨 부분이 크다라고 생각해.


저때나 지금이나 지지층에 인기를 얻은뒤 2~3년뒤 지지층이 제일 피해를 보게되는건 마찬가지. 

개돼지 조삼모사 ㅅㅌㅊ




정치보복의 자살골



역대대통령중에 정치보복한 한사람이나 당한 사람은 항상 있었어.

그만큼 정치 후진국이라는 반증이기도 한데


정치보복을 피하려 대선후보들은 

'정치안해요 내가안해요'를 외치거나 

'대선에 도전하지 않겠습니똬'

를 외쳤어


혹은, 서로 협력해야할 판에 과거에 앙심을 잊지못하고


비자금 등을 수사를 해왔는데 03이도 노태우 비자금을 수사하면서 세금공무원 출신이자 대치동 은마아파트로 큰돈을 벌어 


한보철강이란 회사를 만든 정태수를 조사하면서 정관계 로비가 알려지면서 03의 차남 현철이 구속되고 03은 대국민사과성명을 발표.


국정운영에 급내리막을 타게 되었어.


정부의 신뢰가 상실하였으니 금융개혁법을 발표를 하여도 한계..




동남아에 시작된 위기 


비슷한 시기 동남아시아국들은 수출경쟁력은 좆도 없으면서 관광수입이 주요 경제구조인데 


일본의 저금리 돈을 끌어다 태국이랑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등에서 채권시장 투기와 


부동산 개발등 버블을 일으키며 돈지랄을 하면서 소로스형을 비롯한 세계주요 투기꾼들의 이목을 끌게 만들게 되었어. 


그러던중 고베에 대지진이 발생하게 되었고 일본은 엄청난 산업과 경제에 손실을 가져오게 되었어.


곧 일본 금융시장과 부동산시장은 급속한 유동성침체에 들어가고 미국과 딜로 역프라자 합의를 하게되었어.  


미국은 국내 무역적자와 새로이 탄생하는 유로화를 대항하기 위해 고달러를 유지하려 했었고 


국내외 여러 문제로 불안했던 일본은 투자금회수등을 위해 달러채권을 매각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소로스를 비롯한 여러 헤지펀더들은 든든한 강달러를 믿고 외환보유고는 부족하지만 


버블이 생겨난 아시아국가들의 환율을 대상으로 무자비한 선공격에 들어가기 시작했어.





악몽의 1997년. 본격 IMF


경상수지의 적자가 급격하게 쌓여가다 97년 1월 한보철강이 6조원의 빚을 지고 

부도가 나버려 이후 삼미,진로,대농,한신,기아,해태,뉴코아,대우 등 차례로 부도처리 되었는데 

그중 기아그룹은 10조원의 부채로 금융권이 급몰락하는 원인이 되었어. 

나중에 파산한 대우는 70조..




심각성을 파악. 최초 외환위기 가능성을 3월 한국은행 통화운영국제부장이 보고서를 올렸어. 


영화속 김해수역이었지 당연히 국정운영능력이 하락중이여서 시간만 보냄.


5월달에 태국시장은 급격한 환투기세력의 공격에 투자자들은 자금을 달러로 바꿔 빠져나가고 비트화가 폭락.


식민지배를 받아본적 없는 자존심만 강한 똥냥국은 깜놀 


" 아이고!스시국 행님요! 도와주소! 우리 이러다 IMF급행 탑니더!! "


외치게 되었고 스시국입장에선 가만히 보니 태국을 막지못하면 동남아시아의 영향력이 날라갈꺼 같고, 


나머지 국가들도 연쇄적으로 공격당할꺼 같아 아시아 통화기금을 새로 설립하려 준비에 들어갔어. 


그런데 IMF의 최대주주이자 실질적 권리자인 미재무부와 당시 미국과 협력하던 


새로운 거대시장 중국은 일본의 그러한 시도에 반대를 하게되고 태국은 그해 8월 IMF를 맞이하게되.


강만수는 '여러분 꿈떡마쇼. 조선외환은 문제없습니더'를 발표 환투기 성님들의 승부욕을 자극했지. 


어라? 요것봐라 ㅋㅋ




영화의 시작


영화 '국가부도의 날'의 시작도 이쯤부터 시작.


정의롭고 능력있는 엘리트관료역 김혜수는 외환관리 문제를 발견했다면 왜 보고서만 줄줄 올리고 


그이전 변동환율제 전환을 거론하지 않았다는게 한국영화의 고질적 노현실,노팩트 단순 클리셔 문제라 생각함.


거기에 대중들이 좋아하는 선과 악의 대결구도 선은 거대세력에 눌려 악을 이기지 못하는 뻔하고 단순한 영화들


영화속 정의로운 엘리트관료역 김혜수는 모라토리엄을 선언해야한다지만


결론적으론 '대안'이 될수없는 좌파운동권의 국가부도 선언주장이었어.


외환위기속에 03이는 또 병크를 저지르는게 경제수석을 교체해.


김인호 경제수석과 강경식 경제부총리에서 


김영석 경제수석, 임창열 경제부총리로 교체하는데 나빠진 여론과 대선을 앞두고 책임 떠넘기기였지. 


그리고 앞 두사람은 이후 구속. 컨트롤 타워가 공석이 되면서 아까운 시간만 낭비가 되어버렸어.


이후 IMF와의 협상은 속전 속결로 진행. 


영화와 당연히 다르게 컨트롤타워의 공석기간이후 


재경원은 대안을 검토하느라 IMF행을 미루었고 일본 재무성에 굽신굽신 돈빌리러 갔다가 


"고노야로! 우덜 버르장머리 고치겠다는 조선놈이 무슨 돈을 빌려?! "

문전박대 당하고 한국은행 총재 뜻대로 IMF행을 타게되.





고난의 행군


97년 12월. OECD가입 1년만에 결국 우리나라도 IMF에 관리를 받게 되어버려.

12월 실업률 3.1%는 다음해 2월달에 8.7%로 폭등하고 기업들은 3,300여개가 넘게 폐업을 하게 되었어. 

참고로 현재 실업률은 19년새 최고 문재앙 ㅆㅅㅌㅊ!!!


 


충분히 5년 이전부터 고쳐나갈수 있는 시간과 부분들을 놓쳐버리고 IMF라는 고통속에 


자살공화국이자 원정녀들이 판치던 시대가 되었고 IMF에서도 외환위기를 재정위기로 오판, 


과도한 개혁처방으로 필요이상의 과도한 정책을 사용한 부분도 있었어. 


자살률의 급증,이혼와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사라지고 결과론적이지만 사회인식등 


울나라의 많은 부분이 체질자체가 변하게된 계기가 되었지어. 


IMF가 요구한 구제금융 프로그램을 시행하면서 시중금리는 연29.5% 까지 올렸고 


이전의 부채주도성장은 사라지고 국제결제은행 제도를 도입하여 연결재무제표의 도입과 대출의 


조건이 부채비율 200%이내 자기자본금 8% 충당비율로 만들어지고 당연시되던 어음결제 관행이 사라졌어.


이후 DJ 정부가 들어서면서 대기업의 빅딜과 금융시장의 개방에 일본 사채사업이 


국내에 진출하게 되었고 이후 카드공화국이 탄생 각종 공기업들이 민영화와 함께 


인원이 감축되면서 평생직장 중산층이 하루아침에 저소득층이 되는 세상으로 변했어.




외쳐라 눈물의 국뽕


그렇게 오늘내일 하던 상황에 원조각하의 의리남이자 신뢰의 부하 박태준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과의 채무연장을 이끌어내어 해외대출의 연장을 받아내게 되면서 안정을 찾아올수 있게되.


하지만 사회경제는 물런, SOC와 국방,대중문화에도 큰 타격이오고 이때 딴지일보같은 아님말고식 


막장저질 문화가 탄생하게 되었어. 




그런데 그런 과도한 IMF처방을 우리나라가 최초로 단기간에 벗어남.

여기서 국뽕외쳐도 된다. 


나라가 망한거 같은 분위기 속에 IMF 1년만에 처음으로 상환을 시작 


소로스등 잔인한 해외 환투기인들 조차 한국인들 대다수가 줄서서 금반지등을 헐값에 팔던 예상치 못한 


눈물의 국뽕 깜놀.




다시시작


그렇게 국민들 다수가 대가리 깨어진뒤 99년도부터 국가 신용등급이 상승과 동시


수많은 알자기업들이 해외로 팔려나가거나 통폐합되고 박세리와 박찬호의 쌍박 


국뽕 버프를 받으며 00년 12월 국제통화기금의 차관을 상환하고 IMF위기에 최초로 벗어나.


이후 다음해 8월 구제금융 차입금 전액을 상환하며 IMF관리체제를 벗어나 


그리고 이틈해 2002년 월드컵을 개최를 하지. 





이렇게 아시아의 4마리용과 나머지 도마뱀들이 쓰러져가고 스시국이 잃어버린 20년을 걸어가는동안 


그기회를 놓치지 않고 중국이 일어서게 되었고 최근까지 미국과 으르렁하는 사기가 되어버렸어.





영화의 끝에는 가계부채 폭탄 때문에 또다시 경제위기론이 나오지만 현실은 가계부채 연체율이 계속 줄어들고 있다. 


가계부채는 금액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채무자의 건전한 상환능력이 핵심인데 


현재 재앙이는 DSR비율을 급올려버려 경제를 악화시키고 고용을 축소시키는 현상을 만들게 되었어. 


선진국 어느나라도 100% 자기자산으로 시작하는 곳은 드믈다. 




IMF의 교훈


1. 시장에서 나라(본인)의 위치를 잊지말자.

2. 끊임없이 정보를 얻고 배우며 준비하자.

2. 시장은 예측이 아니라 대응이다.

3. 좆같은 놈은 꼭 조져야 한다.

4. 버티고 살아남자. 살아남으면 기회는 온다.

5. 기회가 왔을때 놓치지 말자.

6. 조선영화는 거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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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전소장 에르 :) 2019. 1. 7.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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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스타크래프트의 전성기 시절... 소수의 여성프로게이머 중에서도 남자 프로게이머에 비벼 볼 수 있는 몇 안되는 선수가 바로 서지수였음. 빼어난 미모도 한 몫해서 스타여제라고도 불렸음.




은퇴하고 2014년쯤 결혼함. 그리고 아이낳고 잘살고 있었음...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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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달간 스타크래프트 유튜버를 중심으로 서지수와 관련하여 논란이 있었음. 

이른바 "스타여캠실력이 서지수와 비빈다"라는 주장이 유튜브를 덥치기 시작함. 

남성 상위 아마추어들조차 전 여자 프로게이머쯤은 나도 이긴다!라고 지랄함.



그 이유는 상위 아마추어야 말할것도 없고 스타 여캠들의 실력이 엄청나게 좋아지면서 실제로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기 때문.

 이는 여성프로게이머는 원래 잘하지 못하고 프로급도 아니었다는 선입견때문이었음.



쉽게 말해, 여자들은 실력이 커봐야 거기서 거기이기때문에

고수의 경지에 다다른 스타여캠들과 과거 여성프로게이머는 거기서 거기일것이라는 어그로성 주장인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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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란이 어그로성을 넘어 진지하게 확산되자

이영호, 이성은 등 남성 프로게이머 유튜버들은 열이받았고 "지수 누님"을 지지하며 서지수가 지금까지 스타 손 놓고있다가 오랜만에 하더라도 기어오르는 여캠들 전부 탈탈 털어버린다며 깊은 빡침을 드러냄.

 더 나아가 스타 좀 한다는 최상위급 래더 남성들도 서지수가 그냥 털어버린다고 주장함.





요약하자면....





"프로가 장난인줄 아냐. 여성프로와 남성프로와 비교했을때 여성프로가 많이 딸리는것은 팩트이지만, 그런 여성프로조차도 여캠이 문제가 아니라 남자 아마추어 최상위급과 붙으도 그냥 개털어버린다"





그런데 이 논란이 지속됐다는걸 서지수 본인도 알게되버림. 본인도 은퇴한지 오래됐지만, 세상 물정 모르고 깝치는 아마추어 유튜버들에게 참교육을 결심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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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시작함ㅋㅋㅋㅋㅋ

그리고 죽지 않은 실력을 뽐내며 기어오르던 아마추어들 두들겨 패는중ㅋㅋㅋㅋ  (명불허전 미모는 여전...)












세 줄 요약


1. 스타 여캠을 비롯한 아마추어들이 전 여성 프로게이머, 특히 서지수를 거론하며 스타로 비빌수있다고 기어오름


2. 논란 확산하자 남성프로게이머 유튜버들이 어이가없어서 서지수 지지... 여자라도 프로가 장난인줄 아노 이기야?


3. 몇달간의 침묵을 깨고 서지수(30대중반 애 엄마임) 본인 등판. 유튜브 시작해서 아마추어들 실력으로 아닥시키는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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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전소장 에르 :) 2019. 1. 5.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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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동물 중에서 제일 인간한테 깊은 인상을 남긴 동물이라고 하면 누가 뭐래도 호랑이들이다. 

호랑이가 나타나지 않는 지역은 모르겟는데 호랑이가 살았던 지역은 대부분 호랑이 전문 사냥꾼이 육성되었다.


원조 조선은 예전부터 호환으로 존나게 유명한 동네였다. 

중국에서도 가정맹어호란 말이 나올 정도로 호랑이를 무서워하긴 했지만, 

그래도 중국은 평야가 많지 조선은 집에서 나와서 열발자국 걸어가면 산나오는 헬산지국가다. 

이런 환경에서 호랭이들은 닭물어가고 말물어가고 소물어가다가 끝내는 인간까지 물어갔다. 

호랑이 때문에 마을 몇 개가 전멸할 정도로 지랄맞게 괴롭힘을 당하니까 아예 호랑이 잡는 전문특수부대까지 생겼다.




착호갑사가 그것인데 이 새끼들은 출동할 때도 왕 허락 받을 필요가 없는 초정예 특수부대였다.

착호갑사 말고도 민간에서 호랑이를 잡는 사람들이 있었다. 엄청나게 위험하긴 하지만 호랑이가죽이 초고가 레어템이기 때문에 한 마리만 잡으면 인생역전이 가능하니 호랑이 나타났다하면 갑사한테 알리는 대신 마을사람들끼리 모여서 레이드를 가기도 했다.


 


호랑이 입장에서도 할 말은 있는데 호랑이들이 인간을 습격하기 시작한 건 조선의 인구증가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늘어난 인구를 부양하려고 좆간들은 온 산에다 불을 싸지르고 화전을 일구기 시작했는데 이따구로 숲이 줄어들기 시작하니까 호랭이들은 쫄쫄 굶다가 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조선 호랑이는 조선 왕조 500년 내내 조선인들이랑 치고박고 싸우다 일제강점기때 좆본한테 전멸당한다. 좆본에는 호랑이가 없기 때문에 호랑이 가죽 벗겨가려고 아주 눈뒤집고 잡아댔다.



호랑이도 소총탄을 박으면 꼼짝을 못해





인도는 병신쫄보국가라 그런지 호랑이 한마리에 저 인원을 모두 투입했다. 맨뒷줄을 보면 코끼리부대도 보인다.




인도식 호랑이 사냥은 존나 큰 대구경 라이플을 들고 존나 큰 코끼리를 타고 존나 많은 쫄따구들을 데리고 레이드를 가는 개졸렬한 물량공세였다.

주로 영국계 돈많은 사냥꾼들이 이 지랄하면서 호랑이 잡고 마초성을 뽐냈다.

수십명씩 하인 데리고 다니면서 코끼리 위에 올라타면서 총만 쏴갈기니까 상대적으로 안전한 편이었다.

하인들은 총보다는 호랑이 흔적을 추격하는 길잡이 역할을 맡거나 시끄러운 악기를 들고 다니면서 사방으로 퍼져서 호랑이를 킬포인트로 몰아갔고 막타를 먹이는건 백인 사냥꾼의 역할이다.

총도 하인이 장전해서 건네준다. 본인은 쏘는 거 말곤 아무것도 안 한다.


 



물론 무조건 안전한건 아니고 다굴을 잘해야 한다.




인도와 달리 상남자의 나라인 러시아는 딱 3명만 데리고 간다.

필요한 준비물은 호랑이를 찾아낼 댕댕이 몇 마리랑 튼튼한 줄이 전부다.

댕댕이는 직접 싸움에 참여 안 한다 그냥 탐색만 한다. 

짤에서도 댕댕이는 응원만 하는 것이 보일 것이다.

심지어 총도 안 썼다 총에 맞으면 호랑이 가죽 상하니까. 

그러니까 러시아 새끼들은 맨손으로 호랭이를 생포했다는 것이다.

한명은 목 뒤를 누르고 다른 한 명은 뒷발을 잡고 다른 한 명은 앞발을 잡는다.

그리고 호랑이가 펀치를 휘두르면 존나 두껍게 입은 털옷으로 막아내면서 버틴다.

그러다가 호랭이가 지치면 입에 재갈을 물고 끌고가는 것이다. 

구라가 아니라 이거 실제 역사에도 기록된 사냥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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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전소장 에르 :) 2019. 1. 5.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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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는

  

보통 다이나믹한 새끼가 아닌데,

 

그 중에서도 유달리 다이나믹한 곳이 있으니,

 

 

 

 

 

 

 

 

 

 

그곳은 에버레스트를 덮고

 

 

 

 

 

 

 

 

 

 

 

압력은 뼈를 가볍게 부술 정도이며

 

 

 

 

 

 

 

 

 

 

 

 

 

알라스카만큼이나 추운 곳이다.

 

 

 

 

 

 

 

 

 

 

 

 

 

그 곳은 바로 세상에서 가장 깊은 바다,  마리아나 해구이다.

 

 

 

 

 

 

 

 

 

 

 

 

1872년 영국 탐사선 챌린저 호는

 

세계 최초로 해저 지도 제작에 나서게 된다.

 

 

 

 

 

 

 

 

 

그들은 광활한 거리를 무려 4년동안 오가며

 

 

 

 

 

 

 

 

225키로 지점마다 바다의 깊이를 쟀다.

 

 

 

 

 

 

 

 

 

 

그 방법은 길이 80 킬로미터, 무게 수 백 킬로그램의 추를 바다에 던져 해저까지의 길이를 재는 방법.

 

 

 

 

 

 

 

 

 

지금 생각해보면 미-개 그 자체이나,

 

기술력이 아직 발전하지 못한 시절 이는 어쩔 수 없는 노가다였다.

 

 

 

 

 

 

 

 

 

(참고 자료: 19세기 후반 조선의 배)

 

 

 

 

 

 

 

 

 

 

 

 

 

 

 

 

 

 

 

 

 

...어찌 되었든, 첼린저 호는 서태평양 괌 부근에서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줄을 내리고 내려도 끝도 없이 내려가는 것!

 

 

 

 

 

 

 

 

 

추는 4,475 패덤 (약 8키로미터)에서야 바닥에 닿았으며

 

 

 

 

 

 

 

 

 

 

전무후무한 깊이에 과학자들은 열광했다.

 

 

 

 

 

 

 

 

 

 

 

구멍이 좁은지 허벌인지, 그 모양은 어떤지 확인해보고 싶어 한다.

 

 

 

 

 

 

 

 

 

지금까지 관측된 바다는 대륙에서 이어지는 완만한 경사,

 

 

 

 

 

 

 

 

 

그리고 해저평원을 만나며 급격히 깊어지는 경사로 이루어져 있었다.

 

 

 

 

 

 

 

 

 

 

 

 

하지만 서 태평양의 경우에는 그 경사 이후에 또다른 경사가 나오며

 

훨씬 더 깊은 바다를 형성했다.

 

 

 

 

 

 

 

 

 

 

과학자 게이들 깜짝 쇼크!!!

 

 

 

 

 

 

 

 

 

 

 

 

그 이유가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당시의 기술적 한계는 연구의 진전을 미뤘지만,

 

 

 

 

 

 

 

 

 

 

연구게이들은 의외의 곳에서 돌파구를 찾아낸다

 

 

 

 

 

 

 

 

 

 

그건 바로 1900년대에 개발한 소나(소니 아님 ㅎ) 시스템.

 

 

 

 

 

 

 

 

세계 2차대전, 잠수함과 어뢰 탐지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소나는

 

 

 

 

 

 

 

 

 

 

 

 

 

수중에 음파를 쏴서

 

 

 

 

 

 

 

 

 

 

 

 

 

 

그 음파가 반사되어 탐지하는 형식으로

 

음파 발생부터 탐지까지의 시간을 기반으로 물체까지의 거리를 알아낸다.

 

 

 

 

 

 

 

 

 

 

 

 

 

 

이 원리는 해저 지형을 알아내는 데 필수적인 기술이었고

 

 

 

 

 

 

 

 

곧바로 마리아나 해구에 음파를 쏘아보냈다.

 

 

 

 

 

 

 

그들이 찾은 것은 거대한 협곡과 같은 도랑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30개가 들어갈 정도의 깊이와

 

 

 

 

 

 

 

 

 

영국이 두개 반이 더 들어갈 수 있는 길이에 걸쳐서 광활한 면적을 자랑했다.

 

 

 

 

 

 

 

 

 

이는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깊은 바다로,

 

 

 

 

 

 

 

 

 

 

이를 처음 발견한 첼린저호의 이름을 따서 첼린저 해연이라 명명된다.

 

 

 

 

 

 

 

 

 

 

 

 

 

이 깊은 바다는

 

 

 

 

 

에버레스트를 넣어도 1.5키로를 더 올라가야 수면이 나올 정도였고

 

 

 

 

 

 

 

 

 

 

 

 

 

연구가들은 이 깊은 해구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궁금해진다..

 

 

 

 

 

 

 

 

 

 

 

심해 탐험가들 출동!

 

 ....하고 싶었지만

 

 

 

 

 

 

 

 

 

 

문제가 있당께요

 

 

 

 

 

 

 

 

 

 

 

마리아나 해구의 압력은

 

 

 

 

 

 

수면의 약 1천배

 

 

 

 

 

 

 

 

말하자면 여객기 50대가 모든 면에서 압력을 가하는 셈!

 

 

 

 

 

 

 

 

 

 

 

 

 

 

한번 실험을 해보자 이기

 

 

 

 

 

 

 

 

 

왼쪽이 원래 석고상,

 

그리고 오른쪽이 마리아나 해구에 들어갔을 시의 압력을 재연한 석고상이다.

 

 

 

 

 

 

 

 

 

 

 

이기이기 뚝배기 깨지기 딱 좋은 조건이노!

 

 

 

 

 

 

 

그래서 고안해낸,

 

 

 

 

 

 

잠수정 '트리에스트'

 

 

 

 

 

 

 

 

전장 15미터,

 

 

경 항공유 사용

 

 

 

 

납으로 부력 조절

 

 

 

 

 

 

12센티의 강철벽으로 전면을 두른 조그마한 조종실

 

 

 

 

 

 

 

 

이렇게 트리에스트는 인류 최초로 심해 잠수에 도전하게 된다.

 

 

 

 

 

 

 

 

돈 월시와 해양학자이자 트리에스트 개발자의 아들이었던 자크 피카드가 동승한다.

 

 

 

 

 

 

 

 

 

 

 

 

그렇게 인류의 위대한 모험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2부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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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전소장 에르 :) 2019. 1. 3.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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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박사님~!! 동양인은 정말 IQ가 높은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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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양인들이 IQ가 높은건 각종 통계자료로 인해 확인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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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 제일 유명한건 아마 오스트리아 빈 의과대학에서 발표한 이 통계자료가 아닐까 싶구나


자료를 보면 동아시아 국가들이 최상위권에 포진되어있고 13억이란 인구를가진 중국조차도 공동 12위에 올라와있지.




하지만 박사님~! 동양인들이 공부를 열심히 하니깐 그만큼 높은거일수도있잖아요~




박사님.jpg  오호 좋은 지적이구나~! 똑같은 환경과 교육을 받으면 어떨지도 한번 살펴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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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자료는 미국에서 백인 중산층 가정에 입양된 아이들의 인종별 IQ 지수란다


보다시피 똑같은 교육수준과 환경에 놓여있음에도 불구하고 IQ의 차이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지




그렇다면 왜 동양인들은 노벨상을 백인에 비해 많이 못탔나요?? 혹시 백인들이 바보도 많지만 천재들이 더 많은 거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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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한게 많구나~! 걱정하지마라. 현대과학은 단순한 IQ수치뿐만아니라 표준편차까지 측정할수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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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표는 아이큐테스트를 받은 각 인종별의 아이큐 표준편차다.


곡선이 퍼져일수록 편차가 심하다는소리지.


파란색곡선이 동아시아인의 아이큐 표준편차인데 가장 많이 퍼져있는게 보이지??


오히려 백인이나 흑인들이 평균치에 더 몰려있는 형상을 보이고 동양인들은 더 넓은 범주를 보이고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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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같은 사실은 전세계 학력수준을 평가하는 PISA가 발표한 공문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동북아시아 국가들은 평가할때마다 핀란드와 같이 최상위권에 놓여있는데.


동북아 국가들은 학생마다 점수대가 다양한반면 핀란드는 점수대가 평균에 몰아있는 경향 즉 상향평준화되어있다고 말하고있어





 혹시 백인들이 더 창의력이 높거나 그런건아닐까요~!??




박사님.jpg  허허.. 현재로서는 아직 창의력이 무엇인가에 대한 정확한 정의를 내리기도 힘들고. 또한 그걸 측정하는건 더욱 힘들단다


하지만 현재 우뇌가 직관적이고 창의적인 영역을, 좌뇌가 논리적이고 계산적인 영역을 담당하고 있다고 알려져있지.


이 자료를 봐보겠나 베충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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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게 뭔가요 박사님?? 뭔진 모르겠는데 east asian은 spatial이란게 높고.. ashkenazi jews는 verbal이 높네요??




박사님.jpg  그래 맞다. ashkenazi jews는 유대인이고, 유대인은 노벨상을 많이 받은걸로 유명하지~


그래서 동양인과 유대인의 지능차이를 한번 분석해본거야.


동양인은 spatial, 즉 공간지각능력이 높고, 유대인은 verbal, 즉 언어논리력이 높다는 것을 보여주는 표란다


공간지각능력은 우뇌가 담당하는 영역이고, 언어논리력은 좌뇌가 담당하는 영역이지.




 어??? 박사님! 우뇌가 담당하는게 창의력과 직관력이라고 하셨잖아요~! 근데 그게 동양인이 더 높다는 말인가요??




박사님.jpg  그렇지! 보통은 동양인들이 주입식, 과도한 교육으로 창의력이 없는게 아니냐는 편견이 있지만


편견과 다르게 동양인은 우뇌가 출중한 인종이라는 말이 되는거란다~


그리고, 뇌과학자들이 연구한결과 공간지각능력은 개발되기 힘든 영역으로 타고난 부분이 큰 영역이라고 하지.


결국 환경이나 교육의 영향이랑 별로 상관이 없는 셈인거지.


주변에 보면 지도 한번보고 끝장나게 길을 잘찾거나 처음하는 게임도 능숙하게 파악해서 잘하는 아이들 있지않니?


그런애들은 머리속으로 시각화하고 입체화하는 능력이 뛰어난거야~! 결국 이것이 아이디어를 떠오르게하는 직관력이나 창의력하고도 이어진다는거지.




그렇다면 대체 동양인들이 노벨상을 백인들보다 못타는 이유가 뭔가요?? 박사님~~!!




박사님.jpg  허허.. 박사님이 지금은 밥먹으러 가야되니깐 밥먹고나서 설명해주마~! (후다닥)




아~~ 박사님~~~~ 지금 설명해주세요~~~~~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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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전소장 에르 :) 2018. 12. 30.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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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명(國名) : United States of America

 

면적 : 9,826,675㎢  (세계 3위)

 

인구: 318,892,103 명 (세계 3위)

 

GDP : 19조 3,906억 400만 달러(세계1위)

 

군사력 : 세계 1위

 

 

 

 

미국에 대한 간단한 프로필이다.  1776년 7월 4일 건국된 이 초강대국은 현재도 자신의 목적을 위해 멈추지 않고

 

역사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그렇다면 그 목적이란 무엇인가? 그건 '초강대국', 그 자체이다. 

 

겉으로는 편안한듯, 여유로운 듯 웃고 있지만 항상 최고여야만 한다는 불안감이 미국을 짓누르고 있으며

 

이 때마다 미국 쇠퇴론이 미국 내부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미국은 여전히 엄청나게 강력하다.

 

2018년 기준 경제규모는 19조 3900억달러로, 중국과 일본, 독일을 합한것과 맞먹으며

 

다른 선진국들과 달리 인구가 계속 증가중이다. 

 

산업구조도 다양하다. 서비스업, 제조업, 농업, 어업 등 1,2,3차 산업이 고르게 분배되어 있다.

 

신기하게도 이런 엄청난 경제규모에도 인구 밀도가 매우 낮다. 

 

1제곱 킬로미터당 34명 수준으로 중국 143명, 일본 350명보다 휠씬 낮다.

 

인도 면적만큼에 국토에 농사를 짓고, 세계 경제활동에 26%를 차지하는 국가가 말이다.

 

경제는 노동, 자본, 토지 이 3요소로 이루어진다는 점으로 볼때 미국은 아직 경제성장을 다 하지도 않았다는 걸

 

알 수 있다.   전성기는 커녕 아직 사춘기일 뿐이다.

 

사우디, 러시아에 이어 주요 석유생산국이며 동시에 주요 석유수입국이다. 이외에도 셰일가스, 철광석, 금속 등

 

막대한 천연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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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강력한 진짜 이유는 군사력에 있다.  미국은  신의 축복을 받은 북미대륙을 완벽히 점령하고 있다.

 

국경을 맞댄 국가는 캐나다와 멕시코 둘 뿐이며 나머지 동쪽과 서쪽은 각각 대서양과 태평양을

 

마주하고 있다. 즉 미국을 침공하려는 국가는 적어도 '바다'를 통해야만 한다.

 

그런데 미 해군의 전력은 전 세계 해군력의 63%이다. 공군은 54%이다.

 

모든 국가가 연합해도 미 해군과 공군을 이기지 못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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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은 인류역사상 한 번도 없었다.  대영제국도 이렇게는 못했다.  

 

바다는 미국의 전략의 기본요소이며 미래에는 우주역시 포함될 것이다.

 

미국의 허락없이는 그 어떤 국가도 마음대로 해상무역을 하거나 군사작전을 벌일수는 없다.

 

한국도, 일본도, 중국도 마찬가지다. 수출에 경제를 의존하는 국가에게 바다는 생명줄이나 마찬가지니까.

 

 

 

 

 

 

어느 국가나 대전략(국가의 기본적인 전략) 이 있다.  부수적인 방법만 달라질 뿐 결국  그들이 이루려는 목표에는

 

변화가 없다. 

 

예를 들어, 2차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대통령이 루즈벨트가 아니었다고 해서 미국은 전쟁에 개입하지

 

않았을까?  일본을 제어하지 않았을까?

 

미국이 어떤 경우에도 유지하는 전략들은 다음과 같다.

 

 

 

 

1. 힘의 균형 (balance of power)

 

미국은 자신에게 도전할 만한 국가가 나타날 때 직접 나서서 공격하지 않는다.

 

아무리 강력해도 그런 일을 했다가는 미국이 보유한 자원을 뛰어넘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패권국이 강력해지기 전에 미묘한 외교정책으로 그 주변국가들간의 갈등을

 

유발시키거나 군사적, 경제적으로 지원하여 대신 견제하도록 함으로써 

 

미리 분쇄하거나 힘을 빼놓아 힘의 균형을 유지시킨다.

 

 

예를 들어 일본과의 전쟁이 끝난후 미국은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과 동맹을 맺고 군사적, 경제적

 

지원을 했으며 심지어는 공산주의 중국과도 핑퐁외교를 통해 연대했다.

 

소련이 침공한 아프가니스탄에 무기를 원조했으며,  이라크 - 이란 사이에 8년전쟁이 발발 했을 때는

 

양국 모두를 은밀히 지원하여 전쟁이 최대한 오래 지속되어 양쪽 모두 약화시킨 후

 

정전협상을 주선했다.  이런식으로 따지면 집단자.위권 용인도 아마 이해가 갈 것이다.

 

미국에게는 친구도 적도 없으며, 단지 미국 스스로를 위한 행동일 뿐 이다.

 

 

 

 

 

2. 자신에게 경제를 의존하도록 만든 미국

 

20세기 이후 경제가 성장한 국가를 보면 공통점이 있다.  첫째는 수출을 통한 성장이며

 

둘째는 미국에게 상품을 팔았다는 점이다.  (일본, 한국 , 독일, 중국, 대만 ,싱가폴 등)

 

위에서 말했듯이 미국은 해군력으로 바닷길을 장악하여 다른 국가들이 마음껏 해상무역을 하게 해주었다.

 

3억이라는 엄청난 소비력을 가진 자국에 물건을 팔게 해주었고 마치 블랙홀처럼 이를

 

흡수한다. 동시에 엄청난 무역적자를 봄으로서 달러를 전 세계에 뿌려 기축통화로 만들었고

 

자국에게 경제를 의존하도록 만들었다. 달러와 함께 국채도 뿌려서 자국이 진 빚을 

 

다른 국가가 지도록 하는데 성공했다. 

 

중국은 미국의 국채를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다.

 

http://www.nocutnews.co.kr/news/4045313

 

그리고 이를 담보로 사회인프라와 경제를 발전시켰다.

 

미국 국채만큼 안전한 자산이 없으므로 팔 수 도 없다. 

 

미국만큼 금 보유량이 많지도 않아서 (세계 1위, 약 8000톤) 위완화를 기축통화로 하지도 못한다.

 

기축통화를 만들려면 무역에서 적자를 봐야하는데 중국은 무역에서 돈을 벌지 못하면

 

사회의 불만을 잠재우지 못한다. 중국 공산당에 진심으로 충성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오로지 돈으로 충성을 살 뿐이기 때문이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나는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경제성장의 진짜 주역은 이승만 대통령이라 생각한다.

 

애초에 미국과 동맹관계를 맺은 그 시점에서 한국경제의 성장은 예견된 일이었다.

 

요새의 한국경제 상황도 마찬가지이다.

 

사실 한국이 중국에게 수출하는 대부분은

 

부품과 소재이다. 정확히는 중국 내 외국기업과 공장에 수출한다.

 

이를 바탕으로 중국은 값싼 노동력으로  완제품을 만들고 이를 다시 미국에 수출한다.

 

결국 중국이라는 길을 한번 거쳤을 뿐, 한국은 여전히 미국에게 엄청난 수출을 하고 있을 뿐 이다.

 

 

 

 

3.  해상장악

 

미국은 세계지배에 기본인 바닷길을 항상 장악하고 싶어한다.

 

해군은 돈이 많이들고 구축하는데 시간도 오래 걸린다. 

 

항공모함 하나가 10조원이며 이지스구축함은 1조원이다.

 

항모전단 1개를 유지하는 비용은 중소국가의 전체 국방예산 보다 많다.

 

어떤 국가가 해군력을 강화하려 하면 미국은 그 국가가 해군이 아닌

 

육군이나 공군에 국방예산을 집중하도록 육지로 국경을 맞댄 국가를

 

부추기거나 아예 그런 예산을 가지지도 못하도록 경제를 약화시키기도 한다.

 

미국은 지금도 실시간으로 전 세계 바다를 해군과 인공위성을 통해

 

감시중이며 마음만 먹으면 어떤 선박이든 추적하거나 파괴할수도 있다.

 

 

바다를 장악하는 한 미국의 경제력은 지금처럼 유지된다.

 

그리고는 그 경제력으로 다시 바다를 장악한다.

 

군사력과 경제력이 서로를 보완하는 구조를 가진 유일한 국가이다.

 

 

 

 

 

다음에는  이러한 미국의 대전략과 한미동맹에 관계에 대해서 써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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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전소장 에르 :) 2018. 12. 30.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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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은 극복 가능성이 높은 방법이 10가지가 넘게 연구 중이었는데
치매는 베타 아밀로이드설과 타우 단백질설 크게 두가지로 연구했었음

그런데 베타 아밀로이드를 표적으로 한 약물들이 실험 결과 모조리 증상 개선에 실패하며
치매 극복에 엄청난 시간이 걸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수면 위로 떠오름
 



그런데 최근 인도에서


치매 앓는 쥐의 장기 기억을 완전히 되살려
completely recover long-term memory in mice with Alzheimer’s disease.

뉴런간 연결이 다시 되어 치매 쥐의 기억을 회복시킴
Neuron-to-neuron connections that form the network were re-established leading to memory recovery in the diseased mice.

내가 영어가 짧아서 잘 모르겠는데 (용서를 구하고 영어 잘하는 유저 있으면 좀 댓글에 써줘라)
이는 두가지 엔자임 (CBP/p300 히스톤 아세틸트랜스퍼레이스들) 을 작동시키는 물질을 통해서인데
two enzymes (CBP/p300 histone acetyltransferases)

치매에 걸린 쥐에게서 억압되는 81가지 유전 표현형이 정상 수준으로 동작했다고 함
81 genes whose expression was repressed in mice with Alzheimer’s were activated to normal levels.

그 결과 죽어가던 뉴런들이 회복되었다고 함.

뇌에 약을 전달하는 건 어려운데 이는 혈뇌장벽(Blood Brain Barrier)이라는 게 뇌에 이상한게 들어오는 걸 막기 때문임.
이를 혈뇌장벽이 통과시키는 글루코오스로 나노구를 만들고 거기에 약물을 장착해서 뇌에 들여보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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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액 뇌 장벽’ 뚫는 나노머신 개발…뇌 질환 정복길 열리나 

뇌에는 잡스러운 것들이 뇌로 들어오지 막는 혈뇌장벽(Blood Brain Barrier)라는게 존재함
그것 때문에 지금까진 목 혈관을 통해 BBB에 구멍을 뚫어서 뇌로 약을 넣는 연구를 하는 등

뇌에 약물이나 나노봇을 넣는 것에 큰 문제가 있어왔음.

‘BBB 통과형 나노 머신’은 밥을 먹을 때 생기는 포도당 농도 변화와 같은 외부 자극에 반응하는 방식으로 BBB를 통과한다. 식사를 할 때 나타나는 혈당 변화는 BBB에 영향을 미치는데 이런 생리적 반응을 이용한 점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연구팀은 “공복에 나노머신을 주입하고 그 후에 식사를 하는 간단한 방법으로 뇌에 약물을 이전보다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뿐 아니라 BBB 통과형 나노머신은 특정 약물이 아닌 다양한 약물을 실어 옮길 수 있다. 

연구팀에 따르면 나노머신을 허기진 실험쥐에게 투여한 뒤 30분 후 포도당 용액을 투여했더니 약물의 투여량중 약 60%가 뇌에 전달됐다. 이는 기존 나노머신에 비해 100배 이상 높은 효과다. 

그러나 이번에 외부  자극에 반응하는 방식으로 잡것을 뇌로 보낼 수 있는 기술이 새로 나옴.
이것은 특슬람들이 꿈꾸는, 나노봇을 통해 클라우드에서 지능을 따오는 신피질 확장이나 
나노봇을 통해 뇌와 컴퓨터를 직결해 완전한 가상현실을 즐기는 완전몰입형 가상현실 등의 기술에 꼭 필요한 기술임.

하여간 뇌과학에 있어 매우 중요한 기술이 만들어졌다는 것은 치매 치료 등 다른 곳에도 쓸 일이 많으니 매우 좋은 일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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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냉각기술 개발 성공... 평방센티미터당 1,000W 냉각 가능


무어의 법칙도 떨어지고 CPU의 연산능력 증가가 감소세에 들어서고, 고집적 반도체는 양자적 한계에 도달했음. 
(이 이상 집적도를 높여 회로를 크게 줄이면 전자가 회로를 뛰어넘어 다른회로로 가버리는는 현상이 생김)
많은 사람들이 기존의 2차원 반도체를 넘어 새로운 방식의 칩을 개발해야 특이점이 오는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함.
실제로 인텔은 아이비브릿지부터 초보적인 3D제작을 이미 시작한 바 있음.


현재 CPU의 연산능력 증가 연구는 크게 3가지 방향으로 이루어지는 중임.

1. 빛을 활용해 연산하는 광光컴퓨터. (난이도 중)
2. 양자를 활용해 연산하는 양자컴퓨터. (난이도 상)
3. 기존의 2차원 칩을 3차원 칩으로 만드는 3차원 분자연산 컴퓨터. (난이도 하)

이 중 3번인 3차원 분자연산 컴퓨터 제작에 있어 가장 큰 장애가 바로 열 문제임.
2차원일땐 칩 위 어디에 있든 위아래로 열 발산이 가능하지만 
3차원이 되면 중간 부분의 열 방출이 자기 자신에 의해 가로막혀 힘들어지기 때문임.


이 점을 예측했는지 미국의 정부기관인 DARPA에서 지원금을 줘 새로운 냉각방식을 만듬.
해당 냉각시스템에서는 액체냉매가 복잡한 일련의 미소관들을 통해 직접 전자칩 내부로 흘러들어가 순환함.

이를 통해 기존의 10배 냉각효율을 보임으로써 3차원 분자연산의 실용화 가능성이 더욱 더 높아지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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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전소장 에르 :) 2018. 12. 30.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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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적 현상을 피할 수 없는 인간은 어쩔 수 없이 배설물을 처리해야만 한다.

그리고 이런 필요성으로 탄생한 것이 바로 '변기'.

 



건강한 사람들은 매일 평균 225g의 배설물을 배출한다자 그럼 여기에 세계 인구를 곱해보자

 72억 인구라고 한다면 매일 배출되는 사람의 배설물만 178만 톤에 이른다


대한민국 K-2 흑표 전차가 약 56톤 정도되니 비교해보면 아마 그 양이 어마어마하다는 걸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 엄청난 양의 배설물을 고이 모셔둘 수는 없는 일이라 어딘가로 흘려 보내거나 어떤 식으로든 처리해야 한다는 것.

 



그래서 과거 아시아 문화권의 농민들은 수세기 동안 공용화장실에 쌓인 배설물을 농작물을 위한 천연비료로써 이용했다


특히 중국은 4천 년 동안이나 인구 과열을 겪어온 나라인지라 

그 배설물을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에 대해 더욱 민감했으니 일부나마 농사에 이용하려 했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나아가 태국에선 사육하는 돼지의 먹이로 배설물을 활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배설물에 대한 서양권에서의 인식은 조금 달랐다


어떻게든 실생활에 활용하고자 했던 동양권에 비해 

서양권에서 배설물은 그저 냄새나고 더러운 무용의 쓰레기에 불과했던 것이다


동양권보다 서양권에서 일찍이 배설물 처리시설인 수세식 변기를 사용하게 된 이유도 이 때문이라 볼 수 있다.

 



우선 현대인들이 평균 5번 정도 이용하는 자기 소재의 '사이펀 변기'부터 알아보도록 하자


우리는 일상 속에서 매일매일 이 변기를 사용하고 있지만 이면에 다양한 원리가 숨겨져 있다는 사실은 모르는 경우가 많다.




변기 물이 내려가는 핵심 원리는 중력이다

6리터의 물이 바로 이 중력의 힘을 빌어 물탱크에서 변기통으로 흘러내리며 배설물을 밀어내게 되는 것이다


흔히 변기를 뜯어볼 때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앞서 말했듯 하나는 물탱크이고 하나는 변기통이다

그리고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부분은 바로 S자 커브 곡선의 배수관 구조이다.




자 반으로 잘린 변기의 내부를 살펴보자


배관공들은 이 S자 배수관의 경사를 흔히 '웨어'라고 부르는데 

이 부분이 변기 내에 고여있는 물의 높이를 일정하게 고정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우리가 아무리 변기를 사용해도 물 높이는 항상 일정하게 유지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리고 이 S트랩 배수관이 있음으로써 아래 하수관의 악취나 유독한 가스가 올라오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물론 변기 내에 일정량의 물이 더 들어가면 배설물과 함께 변기물은 웨어를 넘어가게 된다


용변을 보고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누르는 레버가 물탱크의 6리터 물을 

변기 테두리와 아래 분출구로 흐르게 하면서 변기통을 씻고 배설물들을 변기 중앙으로 모아 흘려 보내는 것이다.




이때 웨어를 넘어 흘러가게 되는 물에는 사이펀의 원리(Siphon Effect)가 작용하게 된다

사이펀의 원리란 이동경로가 내용물로 가득 차면 기압차와 중력이 작용하여 경로의 높이와 상관없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변기 물을 내렸을 시 변기통에 가득 차오른 수면에 작용하는 대기압은 변기물을 웨어 뒤로 넘어가도록 하는 흐름을 만든다

그러면 이 지속적인 물의 흐름은 배수관을 진공상태로 만들고 사이펀의 원리가 작동하게 하며 이로써 변기 내의 이물질들이 쓸려 내려가도록 한다


다시 말해 변기 내에 가득 찬 물이 웨어를 넘어가면 그 후로는 아래로 향하는 배수관에 중력이 작용하면서 

다시금 물이 일정수준이 될 때까지 계속해서 오물을 배수관으로 흐르게 만드는 것이다.

 



변기 표면이 도자기로 만들어지는 것 또한 나름의 이유가 있다

도자기는 기본적으론 점토 재질이지만 굉장히 밀도가 높아서 절대 물이 스며들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의미로 박테리아특정 유기체나 세균도 달라붙어 살 수 없는 환경이라는 말이다.




우리가 보통 쉽게 생각하는 변기는 이처럼 뜻밖의 정교함을 갖추고 있으며 

역사적으로도 여러 사회에서 지속적이고 혁신적인 시도가 있어왔을 만큼 인류 문명의 발전과 그 길을 함께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명의 발전에 있어 가장 큰 저해요소인 질병을 막기 위해 변기와 같은 위생 설비는 필수적이었으니까

실제로 소변 자체엔 세균이 없기 때문에 마셔도 상관없지만 대변은 얘기가 다르다.

 



대변은 75%의 수분과 10%의 소화되지 않은 음식물, 15%의 박테리아로 구성되어 있다


대변이 보통 갈색을 띄는 것은 몸 밖으로 함께 배출되는 죽은 적혈구 잔여물 때문인데 

여기서 빌리루빈(Bilirubin)이라는 물질에는 특히 엄청난 양의 박테리아가 들어있다


악취는 바로 이 수십억 개의 박테리아가 만들어낸다.

 



물론 대부분의 박테리아는 그저 소화를 돕는 무해한 세균들이지만 그중 몇몇은 매우 치명적이다

역사적으로 인간의 배설물과 관련된 질병으로서 악명 높은 것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그 첫 번째는 바로 콜레라(Cholera)

익히 알고 있듯이 극심한 탈수증세를 일으켜 하루 아침에 사람을 골로 보내기도 하는 무서운 질병이다




두 번째는 장티푸스(Typhoid Fever)다

심한 부기나 발진고열메스꺼움을 동반하는 등 다양한 증상을 띄는 질병으로서 굉장한 전염성을 보인다.

 



이처럼 문명의 발전은 배설물 처리그로 인한 질병과의 전쟁이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고대 변기에 대한 사례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우선 기원전 3000년 경 현재 스코틀랜드 북단에 위치한 스카라 브레(Skara Brae) 유적엔 원시적인 형태의 변소가 남아있다


각 집의 구석엔 낮은 칸막이로 마련한 공간과 땅을 파서 만들어 놓은 구멍바다로 통하는 나름의 배수관까지 있다

더불어 현대인과 마찬가지로 배설물을 물로 흘려 보냈다는 점에서 약 5000년 전에 만들어진 변소치곤 정교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사실 정교한 걸로 치면 지중해 연안 크레타 섬크노소스(Knossos) 궁전의 고대 변기에 비길 만한 것은 없다


대리석 좌석과 물탱크시대상으로 꽤나 훌륭한 배수 설비도 갖춰져 있으니까 말이다

물론 고대 로마인들이 들으면 섭섭할 소리지만.




로마가 번성할 수 있었던 수많은 이유 중 하나는 우수한 물 공급 체계와 배설물 처리 능력이었다


중산층에서도 제법 잘 사는 부류의 각 집에는 저마다의 화장실이 설치되어 있었고 

이 화장실들은 그들이 개발한 공중 하수 설비와 연결되어 오물들을 오수 처리장으로 보낼 수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용했던 것은 공중 화장실로 기록에 따르면 서기 315년 로마에는 144개의 공중 화장실이 설치되어 있었다

좌석은 긴 의자 형태로 아래에 흐르는 수로가 배설물을 흘려 보내는 구조였다.


특히 로마의 번영이 극에 달했을 당시에는 무려 420km 길이의 수로로 엄청난 양의 물을 도시에 공급할 수 있었으며 

노동자 계층의 로마인들도 하루 65L의 물을 소비할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러한 각 문명의 놀라운 배설물 처리 능력들도 종전에는 국가의 존립을 위협하는 요소가 되고 만다.




영국 엘리자베스 1세 통치가 막 시작된 시기

화려한 검술과 만돌린모리스 댄서들이 활약한 시대였으나 아직 변기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온 천지사방에 변이 가득했다

집 안팎을 가리지 않고 말이다


조금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닌가

수천 년 전 고대 로마에서도 수세식 변기를 사용했는데 하물며 16세기 중반 영국에 변기가 없었다니.

 



하지만 실제로 엘리자베스 1세 시대, 1500년대 후반에 들어서야 깨끗한 수세식 변기를 개발하려는 시도가 일어났다


그전까진 귀족들조차도 대충 돌로 만들어진 화장실을 이용했고 배설물을 성의 해자 등으로 그냥 흘려 보내곤 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최초로 만들어진 현대적 수세식 변기는 

1596년 엘리자베스 1세의 대자존 헤링턴(John Harington) 경에 의해 개발되었다


이름하여 에이작스(Ajax). 

옥외 변소를 뜻하는 제익스(Jakes)란 속어를 빗대 장난스럽게 부르곤 했던 명칭이었다.

 



기본적으로 이 에이작스 변기 위엔 나무 좌석이 비치되어 있었다

편하게 앉아서 변을 볼 수 있도록 말이다


그리고 용변이 끝난 후엔 손잡이를 당기면 뒤에 설치된 수조에서 물이 흘러나오며 배수관을 통해 배설물들을 정원으로 쓸어 보냈다.


당시엔 혁신적인 시도였다

일단 물은 고여있지 않더라도 변기통과 수조플래퍼 밸브까지 현대 변기의 기본적인 설비는 대부분 갖추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역시 배수관의 구조가 S트랩이 아닌 1자 구조였으므로 오늘날처럼 올라오는 악취를 막을 순 없었다.

 



존 헤링턴 경의 이런 혁신적 개발에도 불구하고 그 뒤로 수세기 동안 유럽인들은 제대로 된 수세식 변기를 사용하지 못했다

그저 뒤뜰에 구멍을 파고 돌로 벽을 쌓은 변소를 이용했을 뿐이다


런던 사람들 역시 캄캄한 밤을 대비해 침실에 요강을 구비해놓았으며 

아침에는 어김없이 '가디 루'를 외치며 배설물을 그대로 창 밖에 쏟아버리곤 했다


여기서 '가디 루' "Regarde l'eau!", '물 조심하세요!'란 뜻의 프랑스어에서 유래된 말이다.

 



차세대 변기가 개발된 것은 1775년 런던의 시계공인 알렉산더 커밍(Alexander Cumming)에 의해서였다


커밍의 수세식 변기는 하단부에 여닫이 덮개가 있어서 볼일이 끝나고 손잡이를 당기면 

이 덮개가 열렸다 닫히며 배설물은 흘러가고 다시금 변기통엔 깨끗한 물이 고이는 식이었다


더불어 커밍의 변기엔 S자 배수관도 마련되어 지독한 악취가 올라오는 것을 방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인 하수 시설은 아직 적절히 완비되어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따라서 정화조는 곧 오물로 넘쳐났고 많은 양의 부패한 배설물들이 땅 속으로 스며들었다

가정에서 버린 배설물 섞인 하수가 땅 속으로 스며들었기에 이제 이웃집나아가 온 마을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더구나 당시엔 배수관이 있었다 하더라도 오물이 향하는 곳은 결국 마을의 수원인 인근 강이었기에 

사람들은 전날 버린 배설물이 섞인 물을 스스로 마시는 꼴이었다.

 



그리하여 19세기 무렵엔 10명의 아이가 태어나면 성인이 되기 전 8명이 질병으로 죽어나가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바로 콜레라 때문에 말이다


콜레라는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이동해왔다

1832년엔 파리와 런던에 상륙했으며 1831~1832년 사이에 영국에선 약 5만 명의 사람들이 이 콜레라로 인해 사망했고 

파리에선 여름 동안에만 18,000여명이 사망했다


그리고 이 지독한 콜레라 전염병은 32년 같은 해 미국의 보스턴과 필라델피아에까지 이른다.

 



피어난 문명의 한 자락인 줄 알았던 수세식 변기의 발달은 이렇듯 되려 서양권 국가들에게 재앙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전염병 문제가 심각해지자 사람들은 단순한 발상에서 비롯된 해결책을 내놓는데 

오물을 씻어내기 위해 더 많은 물을 사용하자는 것이었다.

 



따라서 제정된 1848년 영국의 공중보건법

이는 영국인들의 각 가정마다 화장실과 변기를 설치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1858년 대악취 사건(The Great Stink)을 야기했다

해결책이라고 내놓은 법안이 문제의 근본인 하수 처리 시스템의 개선은 아예 건드리지도 못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영국의 1858년 여름은 유난히도 길고 더웠다

늘어난 변기에 의해 더욱 많아진 하수는 강둑에 쌓이기 시작했고 빠르게 부패해갔다


정말이지 그 악취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였다.

 



유례없는 충격을 안겨줬던 이 대악취 사건.


그 이후 영국 정치가들은 드디어 하수 처리 시스템에 눈을 돌렸고 

이윽고 주변 여러 나라들도 앞다투어 많은 비용을 들이며 효과적인 하수 처리 설비를 갖추게 되었다.

 



자 그렇다면 과거 배기차비행기 등 탈것 안에서의 용변은 어떻게 처리되었을까


항해하는 선원들의 경우엔 사실 따로 변기란 게 필요가 없었다

바다가 곧 변소요하수구였으니까


다만 변소는 항상 뱃머리에 마련되어 있었는데 그래야 오물들이 시시각각 부딪치는 파도에 즉각 씻겨 내려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이유로 선원들은 화장실을 헤드(Head)로 불렀다.

 



산업 혁명의 대명사로 통하는 증기기관의 개발로 등장하게 된 기차의 변소는 어땠을까


초창기 그레이트 웨스턴(Great Western Railway) 철도회사가 운영한 

1841년의 브리스톨-런던행 기차만 해도 내부엔 변기는커녕 화장실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이 부분에서 선두를 달린 것은 미국 철도사였다


바닥에 구멍이 있는 깔때기 모양의 용기를 설치하고 

배설물은 구멍을 통해 그대로 선로에 내다버리는 방식으로 기차 내에 변기를 마련한 것이다


달리며 배설물을 내뱉는 기차라니

꽤나 우스꽝스럽게 들리지만 미국 국영 철도회사 암트랙(Amtrak)에선 2000년까지 이 방법을 사용했다.

 



비행기 역시 마찬가지였다

초기 비행기의 변기는 밖으로 연결되는 호스를 부착한 깔때기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세계 2차대전이 한창이던 무렵엔 나름 변기통 모습을 갖춘 양동이로 대체되었다.


이렇듯 그냥 밖으로 배설물을 내다버리던 원시적인 방식의 변기에 변화가 찾아온 건 화학기술과 진공시스템의 진보 덕분이었다




착륙시까지 정화조에 배설물을 보관해두는 방식이 마련되면서 가장 큰 문제로 떠오른 것은 올라오는 악취와 똥물을 역류하게 하는 난기류였다.


그런데 진공 시스템이 잔여물 없이 깨끗이 변기 내 배설물을 처리해 정화조에 보관될 수 있도록 해주었고 

화학 약품이 다시금 변기를 씻어줌에 따라 악취 문제 또한 해결해주었다.




사실 오늘날 비행기에서는 일정 고도에서 생기는 외내부의 압력 차를 이용하여 

따로 진공모터를 쓰지 않고도 배설물을 처리하고 정화조를 진공상태로 유지한다.




마지막으로 우주 비행선은 어떤 형태의 변기를 갖추고 있을까

우주선의 변기는 기본적으로 앞서 살펴본 배기차비행기의 변기와 배설물 처리 원리부터 그 궤를 달리한다


왜냐고알다시피 우주 한복판에선 인위적으로 만들지 않는 한 중력이란 게 존재하지 않으니까.




그래서 1962년 나사는 월풀(Whirlpool)사에 이 문제의 해결을 의뢰했다


그리고 3년에 걸친 연구와 실험을 통해 개발된 우주비행사용 변기는 두 개의 비닐주머니였다

하나는 소변다른 하나는 대변을 처리하기 위한 용기였다.

 



소변의 경우엔 처리에 있어 별다른 불편함이 없었다

용기에 소변을 본 후우주선 내에 설치된 구멍을 통해 그대로 내다버리면 됐으니까


그러면 소변은 방출된 그 즉시 수천 개의 작은 얼음 알갱이로 변했는데 

무서울 정도의 냉기가 지배하고 있는 우주 공간 특유의 성질 때문이었다.

 



헌데 어처구니 없게도 이 작은 얼음 알갱이들에 빛이 반사되면 놀랍도록 아름다운 장면이 연출되곤 했다


그래서 1965년 발사된 제미니 7호의 우주인들은 자신들 소변이 우주 공간에 배출되는 것을 지켜보며 유리온(Urion)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소변을 뜻하는 Urine에 별자리인 오리온(Orion)을 합쳐 만든 그들만의 은어인 셈이었다.




그러나 대변은 경우가 좀 달랐다


일단 용변을 보면 비닐주머니를 화학살균제를 함께 밀봉한 뒤 잘 섞이도록 대변을 밀가루 반죽마냥 한참 주물러줘야 했던 것이다


게다가 비닐을 엉덩이에 밀착시켜 대변을 모은다는 게 보통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본인의 대변이 우주선 내를 둥둥 떠다니는 불상사가 일어나곤 했다.




실제로 얼마 전, 'NASA's Turd'로 지칭되는 

아폴로 10 '미확인 배설물체 사건'이 기록된 기밀 문건이 공개되며 세계인들의 웃음을 산 일이 있었다.



CONFIDENTIAL "기밀 문건"


CDR (Thomas P. Stafford) : Oh - Who did it? "아 누가 싼 거야?"

 

CMP (John W. Young) : Who did what? "누가 뭘 했는데?"

 

LMP (Eugene A. Cernan) : What? "뭔데?"

 

CDR : Who did it? (Laughter) "누가 싼 거냐고" (웃음)

 

LMP : Where did that come from? "저게 어디서 나온거야?"

 

CDR : Give me a napkin quick. There's a turd floating through the air.

"누가 빨리 휴지 좀 줘여기 똥이 둥둥 떠다니고 있다고"

 

CMP : I didn't do it. It ain't one of mine. "내가 싼 거 아냐저 똥 내 것이 아니라고"

 

LMP : I don't think it's one of mine. "내 것도 아닌데?"

 

CDR : Mine was a little more sticky than that. Throw that away.

"내 것은 좀 더 끈적끈적해일단 저거 빨리 버려"

 

CMP : God almighty. "아 씨발"

 

SC : (Laughter) "웃음"




1973년 스카이랩(Skylab)이 발사되면서 나사는 WCS(Waste Collection System), 좀 더 변기다운 변기를 선보인다


진공청소기의 원리를 이용해 대변을 빨아들여 저장 탱크에 담도록 하는 변기였다

그리고 스페이스 셔틀 시대에 이르러서는 보다 완벽한 진공청소기식 우주 변기가 등장했다.




오늘날 우주 변기는 좀 더 부피를 줄이기 위해 수거한 대변을 진공 건조시키는 기술까지 접목되어 있으며 

이를 통해 우주비행사들의 건강상태를 검진하기도 한다


물론 우주비행사들이 머무는 공간은 어디까지나 우주이므로 직접적인 변기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성인용 기저귀나 선외활동 우주복에 설치된 소변 처리 장치를 이용하는 일도 적지 않다.




이렇듯 우리는 우주에서조차도 변기 없인 살아갈 수 없다

하지만 보통 화장실이나 욕실 좀 쓰겠다고 말하지 당당히 변기 좀 쓴다고 말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상식적으로도 욕조보다야 변기를 쓰는 일이 훨씬 많은데 영어조차 Bathroom이라 칭하지 Toilet-Room이라고 부르진 않잖아?




그렇다면 이토록 용변 보는 일을 사적이고 금기시하는 풍토는 언제 형성된 것일까


적어도 19세기 전엔 이런 문화가 전반적이지 않았다


남녀구분도 없고 특히 활성화되어 있었던 고대 로마의 공용화장실을 제외하고도 

여러 문화권에서 여러 좌석이 딸린 옥외 변소가 발견된 바여러 사람이 함께 용변을 보는 일은 이상할 게 없었던 것이다.

 



조금씩 변화가 생긴 것은 바로 영국 빅토리아 시대(Victorian Era : 1837~1901). 


이 시기를 거치며 사람들은 신체에 대한 얘기조차 금기 사항으로 여기게 되었다


그 여파로 도서관에서 남성과 여성 좌석이 따로 나눠지는 일도 있었으며

개인 화장실에 대한 욕구가 증대함에 따라 20세기 초 집집마다 화장실이 생기는 데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자연스러운 생리현상에 대해 부끄러움을 표출하는 일은 동양보다 서양권에서 훨씬 심했다


화장실용 휴지가 처음 판매된 1895년 스콧 페이퍼 컴퍼니(Scott Paper Company)의 스콧 형제도 

제품 이름이나 홍보에 변기에 관련된 언급은 일절 하지 못했던 것이다.




대중문화의 영향도 지대했는데 20세기 내내 미국 방송국에서는 스쳐서라도 변기에 관련된 내용은 절대 다루지 않았다


실제로 1960 NBC 'The Tonight Show' 진행자 잭 파(Jack Harold Paar)가 변소(Water Closet)라는 말을 사용하자 방송사 측에서 이를 삭제해버렸고 

1970년대 드라마 'All in the Family'가 히트를 칠 때까지 텔레비전에선 화장실 물 내려가는 소리조차 방영되지 않았다.

 



게다가 사실 영어권에서 변기를 뜻하는 완곡한 표현

'Toilet'도 19세기 특별한 행사가 있는 날을 위해 아침 세수부터 옷 입는 것까지 이 모든 과정을 뜻하는 단어에서 유래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빅토리아 시대의 변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지금도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분명한 건 변기는 역사적으로 어떤 식으로든 인류 문명과 함께해 왔으며 

우리 삶에 있어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물건이라는 것이다


앞으로 또 어떤 기술이 발전하며 새롭게 변모할 지는 알 수 없지만 

먼 미래에도 변기는 우리와 함께할 것이다.






긴 글 읽어줘서 고맙다


자료 출처는 NGC, 구글 이미지




3줄 요약

1. 역사적으로 인류에게 있어 배설물 처리 시설은 필수적이었다.

2. 따라서 차츰 변기가 개발되었고 이는 여러 운송수단에까지 설치되었다.

3. 변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팽배해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기는 언제까지나 우리와 함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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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전소장 에르 :) 2018. 12. 6.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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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 조성을 위해 먼저 브금을 켜고 읽자)









리학도가 알려주는 은꼴의 과학적 원리
















자..여기 존나 꼴리는 미소녀의 나체 사진이 있다. 꼴릿 꼴릿 하는가?












비슷한 그림 하나 더.. 















자..이제 원본과 함께 보자













 










아래 다른 것도 있다






















 

<심리학 교과서 같은데서 찾아볼 수 있는 좀 더 건전한 예>







바로 위의 그림은 부분정보들만 봤을때는 알 수 없지만...

가려놓고 보면 그것이 알파벳 B였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이처럼 우리가 무언가를 볼 때는 뇌의 시각시스템이 물체의 가려진 부분을 자동적으로 추론하고 계산하여 메꾸는 과정을 거친다... 







우리 앞, 몸 밖에는 광대하게 펼쳐진 시각자극들의 배열이 있다...이런 물리적 감각정보들의 홍수 속 에서... 


환경에 관한 모호성(ambiguity)과 불확실성을 명백하게 해석하려는 경향성을 우리의 뇌는 효율적인 생존을 위해 갖출 수 밖에 없다. 


인간의 의식이나 지각과정을 이해할려면 바로 이 모호성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데...


감각 수준에 등록되는 하나의 정보가 지각이나 정체파악수준에서는 여러가지로 해석되는 메커니즘이 

인간의 의식과 정신과정을  이해하는 한가지 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모호한 그림의 대표주자 : 네커 육면체> 






이 입체의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하다.(한 순간에는 오직 하나만을 의식적으로 경험)

이것은 의도적인 의식의 "선택적 주의" 얘기로 까지 넘어간다...주의(attention)라는 주제는 이 글의 의도를 넘어가는 것이므로 생략한다.






여기서 위의 그림들로 설명하면 


시각정보가 망막에 맺히는 정보안에는 엄연히  

입벌린 키위 3조각이 있을 뿐이지 완전한 삼각형은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매끈한 삼각형을 경험한다..






완전한 육면체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고 듬성듬성한 검은 원이 있을 뿐이지만 

부족한 단서의 사전지식이나  축척된 선행경험에 근거하여 

부분적인 정보를 메꿔버려서 육면체로서 경험할 수 있다... 












..조금 다른 그림을 보여주자면 

   


이미 많이들 봤겠지만 이 그림은  MIT의 심리학자 에드워드 아델슨이란 양반이 만든 체커보드 착시다 

워낙 유명해져버린 그림이라...알겠지만 a와 b는 사실 같은 색이다 







이렇듯이 실제 망막상에 맺히는 정보는 동일함에도 정체파악 수준에서는 다르게 경험하게 된다. 



감각 자극이 그대로 머리로 쏟아져 들어오는 것 같아도 그 밑바닥에서는 뭔가 복잡한 계산이 작용하고 있으며 

우리가 지각하는 현실은 항상 그 계산의 결과지 실재 그 자체가 아니다. 








이 빨간색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일까?



우리의 빨강 경험은 저기 토마토 위에, 혹은 모니터에 저렇게 실재(distal stimulus)하는 것이 아니다.

환경에 발을 뻗고 있는 육신이라는 "한계" 를 가진... 동물에 불과한 우리 몸이 이미 보유하고 있는 체계(sensation)가 우리 몸 밖.. 

미지의 세계에 있는 정보들과 접촉하여 맞물리면서(proximal stimulus)...그 정보를 

우리의 뇌가 빨강경험(perception)이라는 형태로 구성해낸 환상이자 착각인 것이다.



우리는 물리적이고 독립적이며 직접적으로 환경과 접촉하고 있는것이 절대 아니다.

 

뇌라는 전매상이 독점하는 단편정보를 통해  그렇게 착각하게끔 정교하게 속고 있는 소박실재론자(naive realist)일 뿐이다.


우리 몸 밖 미지의 세계에서 우리 생존에 필요한 정보를 우리가 알아먹는 형태로 가공하는 처절한 생존의 몸부림일 뿐인 것이다.




시각자극뿐만 아니라....다른감각은 또 어떨까?






자, 상상해보자.


숲 속에서 거대한 나무가 쓰러져 꽈과광! 하고 울렸다.

만약 그 숲에 아무도 없었다면 이때 소리는 어디에 존재하고 있는것일까?





소리라는 것의 본질은 두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물리적으로 소리란 놈의 본질은 공기나 다른 매체에서의 압력변화이다.


하지만 소리에 대한 지각적 정의는 그 변화를 접할때 우리가 겪는 경험이다.


우리가 이미 보유 하고 있는 감각적 형태가 요 모양으로 생겨서..

하필 그 모양으로 생긴 감각계가 그 공기의 압력 변화 정보를 요모양으로 정보를 채집하고..

그 채집된 정보를  우리의 뇌가 우리의 생존에 유용한 형때로 뽑아내는 정보....

그것이 소리라는 경험의 본질이다.




고로...답은 소리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숲에 아무도 없었고, 경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간다면 우리는 굉장히 상식과 어긋나는 가능성과 마주치게 된다 



사람들은 흔히 이런 종류의 착시효과들을 인간의 인식이 얼마나 믿을 수 없는지를 나타내는 증거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사실 심리학자들의 의도는 반대다. 이런 착시그림은 인간의 인식의 정교함을 드러내기 위해 심리학자들이 애를 써서 고안해낸 것이다. 



착각은 우리가 세상을 잘못 보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역설적이게도 세상을 잘 보려고 하기 때문에 생겨난다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 우리는 절대 이 세상에 독립적으로 행동하는 자유의지를 지닌 행위자로써, 물리적세계의 대상과 직접 접촉하는것이 아니다.

그것은 허구이고 환상이며 몸밖 미지의 세계는 절대 직접적으로 알 수 있지 않다. 하지만 몸 밖의 미지의 세계에는 분명히 "무언가"가 있다

그 정보를 우리는 최대한도로, 가지고 있는 육신이라는 자원의 한계를 최대한 활용하여, 우리가 처한 상황에 유용하게 파악하기 위하여 발버둥을 친다

하지만 그 전략은 불행하게도  가끔 의도 외 다른 side effect를 갖는다.  그것이 착시고 착각이다. 

그것을 역으로 들여다볼 때 마음의 작동방식과 설계도를 좀 더 파악할 수 있는것이다.


심리학자들은 그런 우리의 의식체계가 작동하는 방식을 알아내기 위해 여러 가지 착시를 만들어낸다.

위의 그림도 그런 시도의 일환인데...


 우리는 위의 그림을 통해 시각 체계는 한 부분의 밝기를 결정하는 단순한 작업에도 다양한 맥락 정보(기둥의 그림자, 체커보드의 무늬 등)를 

고려해서 자동적으로 계산해 나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 과정을 역으로 이용하면 바로 저런 착시를 만들 수 있다. 

또한 이 원리를 우리가 우리 머리 속에서 돌아가는 것과 비슷한 알고리즘으로 구현할 수 있다면, 

"그런 것처럼 보이는" 정도가 아니라 "그런" 이미지 자체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된다.





<포토샵에 심리학자들이 밝혀낸 원리와 기술들이 녹아있다는 사실을 몇명이나 알고 있을까?!!?!?>



바로 이런 식으로 심리학자들은 여러가지 착시를 만들어봄으로써 

무의식적 계산 과정에 대해 여러 가지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증거를 하나씩 모아 시각 체계와 의식의 원리를 파헤쳐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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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전소장 에르 :) 2018. 12. 3. 00:15